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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시편 61:1-8 | 미래를 끌어와 오늘을 사는 자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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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작성: 2024.04.18.(목)
정리: 2024.04.18.(목)


시편 61:1-8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개역개정)

 

하나님,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 기도 소리를 귀담아 들어 주십시오. 내 마음이 약해질 때, 땅 끝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내 힘으로 오를 수 없는 저 바위 위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들에게서 나를 지켜 주는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내가 영원토록 주님의 장막에 머무르며,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겠습니다. (셀라) 주님은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 내 서원을 들어주시고,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유업을 내게 주셨습니다. 왕의 날을 더하여 주시고, 왕의 해를 더하여 주셔서, 오래오래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 왕이 오래도록 왕위에 앉아 있게 하시고,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진리로 우리 왕을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때에 나는 주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노래하며, 내가 서원한 바를 날마다 이루겠습니다. (새번역)

 

나의 묵상: 미래를 끌어와 오늘을 사는 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며칠째 새로 성경을 깊이 묵상하지 않고 나선 길. 동네 마트에서 할인하는 식료품들을 챙기고, 계산원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이어폰 한쪽을 뽑았었다.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 보니, 또 이어폰 캡이 사라져 있었다. 마트 바닥이나 계산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자주 빠지는 물건이었던지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을 도서관에 왔다. 그리고 꺼낸 QT 책은, 원래 하던 책이 아니라 다른 호수였다. 오늘 왜 이러지.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거니 하며 펴자 시편 61편이 나왔다. 원래 하고 있던 호에서도 몇 편인지는 모르지만 시편을 할 차례였다. 그래서 흐름이 끊길 일은 없을 것이다. 말을 더하자면, 원래는 진작에 지금 이 호를 해야 했다. 하고 있던 호가 애초에 차례를 헷갈려서 시작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내게 시편 61편이 놓인 이유는 무엇일까. 점심 때쯤 통화하긴 했지만 될지 안 될지, 된다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먼 곳의 학원 독서 토론 강사 자리, 여기저기 지원한 외국인 대상 한국어 강사 자리, 결과를 기다리는 방송국 자리, AI 업체에서 모집하여 자원한 영상 편집자 자리, 정비해야 하는 유튜브 채널 등 갈팡질팡하면서도 정작 아무 데도 가지 못해 불투명한 나의 미래. 보이지 않는 연애와 결혼.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자손으로 오지만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창조자이신 왕이자 주님을 그린다. 주를 향한 찬양이자 곧 자신에 대한 보호를 간구하는 기도. 다윗은 궁극의 미래, 미래 이후의 미래, 종말을 넘어선 미래를 바라고 있다. 어느 때에? 마음이 약해질 때, 중앙으로부터 땅 끝으로 도망쳐온 때,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 새벽 날개를 쳐서 바다 끝으로 피신했을 때. 이럴 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도자요, 피난처요, 견고한 망대요, 피할 바위와 거할 산성이자 장막이라고 고백한다.

예수께서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한다(히 12:2). 성도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벧전 1:8),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소유한다(롬 8:18). 나는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끌어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정작 내가 그렇게 살지 않고 있었다.

궁극의 완성이 있고, 최후 승리가 있고, 영원한 미래가 있다. 그래서 지금 안심하고 안전히 있을 수 있다. 악인의 장막에서의 천 날보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더 좋으니(시 84:10),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할 때까지 험한 산과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장된 푸른 초장으로 확실히 인도하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지팡이와, 발과 길의 등불 빛이 있기 때문이다. 종말 이후로 내가 완성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1-6, 시 119:105).

태만하지 않되 태평하자. 이유와 근거가 있는 평안이다. 세상은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평안이니(요 14:27),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며,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한 신(엡 6:15)을 신고 산을 넘자(사 52:7). 불안에 떠는 이들에게 영원한 평안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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