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8.09.11.(목)
정리: 2024.01.23.(화)
시편 69:13-28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원하시며 내 원수로 말미암아 나를 속량하소서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개역개정)
나의 묵상: 성경 속 최악의 저주
다윗의 분에 넘쳐보이는 저주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가 당한 고초에 대한 보응을 구하고 있음을 저주의 절 앞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고난받는 모습(19-21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케 한다(마 27:34, 요 19:28-30 등). 앞절과 전문맥(시 69:1-12)에서도 나타나지만, 다윗은 이유 없이 부당하게 당하고 빼앗기고 홀로 버려졌으며 고초를 겪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저주의 절(22-23절)과는 달리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찢고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다(눅 23:34). 그렇다면 다윗의 저주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의 저주는 삼위 하나님께서 모여 오랜 회의를 거쳐야만 행하실 일들을 구하고 있다. 그만큼 원한이 사무친 것인가? 하나님의 심판에 원수들을 맡긴 것으로 이해해보자. 19절이 그 근거가 된다. 주님은 다윗이 당한 일과 억울함을 알고, 대적자들은 주님 앞에 있다. 여기는 법정인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피해와 대적자들의 죄를 드러낸다. 그리고 죄목에 따른 형벌을 이렇게 해주십사, 분노와 억울함에 찬 고소인의 입장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 판결은 하나님의 몫이다. 그리고 아직 최종적으로 양과 염소를 가를 심판의 날은 오지 않았다.
본문의 이 장면은, 요한계시록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신원해달라고 청하는 순교자들의 모습과 연결 짓는 게 타당하다. 다윗의 고초도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며,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른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의에 속했다는 것과 억울함이다. 다윗과 순교자들과 하박국 등은 하나님께 묻는다. 언제쯤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느냐고. 이들은 악의 무리를 어서 심판하여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고 그들이 속한 의가 승리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물론, 다시 밝히거니와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같은 이야기지만 좀 더 구체화한다면, 마지막 날에 심판은 대적자들과 원수들을 용서해달라 하신 어린 양 예수께서 하신다. 그분이 순교자들의 탄원을 그대로 들어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리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이 집행되리라는 것이다. 그 심판은 의롭고 합당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며, 모든 억울함을 풀고 모든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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