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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시편 76:1-12 | 미래를 현재에 살도록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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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4.12.(금)
정리: 2024.04.12.(금)


시편 76:1-12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알려지셨도다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도다 (셀라) 주는 약탈한 산에서 영화로우시며 존귀하시도다 마음이 강한 자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장사들도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손을 만날 수 없도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셀라)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그가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그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개역개정)

 

나의 묵상: 미래를 현재에 살도록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완성될 때에, 시편 68편과 아울러 시편 76편도 다시는 반복할 일이 없도록 최종적으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견뎌야 하는 인생은 버겁다. 여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횡행하고 있다. 창칼을 쳐서 삽과 보습을 만들 날은 언제나 올까. 마지막에야 이뤄지겠지, 라고 체념적으로 생각하며, 현실에선 기대가 사라져 간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푸틴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일하심을 소망하지 않는 내가 무엇이 크게 다를까.

이는 내 인생에서도 그렇다. 내가 육신 장막을 벗고서야 진정한 자유와 복락을 받을까 하지만, 그때까지 이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선하게 일하실 거란 믿음이 없다.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때문이 아니다. 그거야 어쨌건, 그보다 내 삶에 가까운 문제는 역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람을 사랑할 때는 그 사람에게 주목하며 온 마음과 생각과 뜻과 목숨을 다한다. 하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은 다른 생각과 마음과 뜻인 경우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상대방을 겹쳐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 한 사람은 그 사람으로서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어떤 조건이나 상태, 상황을 사랑의 조건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은 내가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고 마음 쓰지도 않는 과거를 굳이 물어보고는, 답변을 받아들고 상상력을 더해 마음과 신경을 집중하여 불쾌해했다. 나는 상대방이 내게 죄책감을 느끼는 현실과 현재마저 용납하지만, 상대방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과거에 나는 잘못한 것 없이 죄인이 됐다. 나는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은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이상적인 환상을 덧씌우고 그 환상에 어긋나면 버리는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어가자는 약속도 저버린 이유가 있었을까. 환상 속에서 나는 마음이 강한 존재라서, 실제의 내가 괴롭고 아프다는 호소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거식증에 시달리고, 그 때문인지 코피가 멎지 않으며, 한참을 씻지도 않고 누운 채 하루하루의 계획들을 날려버리고 있다. 한 사람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기에 겪는 고통이다. 특정 조건에 맞는 사람을 바란다면 같은 조건의 누군가를 찾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니까 괴롭다. 상대방에게 나는 삶의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향에 맞게 존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는, 일종의 유기견인 셈이다. 사람은 애완동물과 진지하고 진득하게 소통하지 않으니까, 내가 아프다고 앓는 신음 소리는 개가 짖는 소리로 들릴 뿐인 거다. 반려견은 주인에게 진심이고 충심이고 주인만 바라보는데, 주인은 개를 보면 싫은 생각이 떠오른다고 집어던진다. 그래도 개는 뭐가 좋다고 항상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흔든다.

나는 개가 되어도 좋을 만큼 사랑하지만, 그래도 ‘개 취급’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 대우’를 해주면 좋겠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면 좋겠다. 나를 개로 여기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소통의 창구를 열어주시기를.

그리고 침묵하시는 하나님께서도, 응답해주시기를. 내가 다시 선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기대할 수 있게. 내 인생의 암흑기가 내 인생의 시간만큼 길지는 않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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