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8.12.(월)
정리: 2024.08.13.(화)
시편 79:1-13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개역개정)
나의 묵상: 은혜를 저버리는 자에게 은혜를
예루살렘 훼파가 시에 등장하는 본문은 역시 남유다의 멸망을 배경으로 한다. 시인 아삽은 파괴된 조국의 처참한 상황을 하나님께 아뢴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항복 요구 서한을 하나님 앞에 펼쳐놓은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께 아뢰는 상황은 히스기야의 상황처럼 위기에 직면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멸망이 휩쓸고 간 뒤다. 시인은 하나님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말고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구한다. 나라가 망했는데 죄를 잊어달라는 기도가 상황에 맞을까?
그는 나라가 망한 이유를 알고 있던 것이다. 조국의 국력이 약해서, 반대로 바벨론 제국이 강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기를 수백 년 동안 해왔고 돌이키지 않았기에, 만국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통해 징계하신 것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가나안 민족들을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통해 징벌하신 것처럼. 즉 유다는 자신들의 죄악으로 망한 것이다.
시인은 그러할지라도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돕고 구해달라고, 죄를 사해달라고 구한다. 아무리 못났어도 주의 백성들이니, 우리가 망하면 이웃과 열국에 하나님의 명성을 바로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위해서라기보다 하나님 당신을 위하여 가련한 우리를 건져달라고 구한다. 포로로 끌려간 우리의 탄식이 열방의 통치자에게 닿기를, 처형이 결정된 이들의 생명을 지켜주시길 구한다.
5월부터 3년 같은 3개월 동안 소송에 시달리며, 정도와 심도에선 당연히 차이가 크겠지만 아삽의 심정으로 보냈다.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었기에 회개하고 배상에 힘쓰면서도, 내가 내 죄악으로 망했으나 주께서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했다.
그랬던 소송이 끝을 보이고 있다. 수련회 중이던 지난 금요일, 법원에서 변론기일이 잡혔다며 문자 메시지가 왔다. 합의문을 썼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여 전화를 했더니, 재판 날짜가 잡힌 거란다. 합의문을 썼다고 했더니 합의문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 합의문을 지금 내면 안 되지.
곧바로 원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그제야 원고가 합의문 개정에 동의했다며 다음주 금요일 11시에 오라고 알려준다. 먼저 내게 알려줘야 하는 걸, 지난번에도 그렇고 꼭 내가 물어봐야 알려준다. 아무튼, 그러면서도 어떻게 개정됐는지 미리 보여줄 수는 없단다. 내가 보낸 추가 내용을 다듬은 것뿐이라는데 왜 못 보지? 와서 도장만 찍으라는 건데, 이러면 또 좀 쎄하다.
어쨌거나 마무리가 다가오고 있으나, 어제 설교 본문은 나를 다시 서늘하게 했다. 에스라 9장 1-15절에 기록된 에스라의 기도. 당시는 유다가 망하고 70년쯤 뒤, 바벨론을 대체한 페르시아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을 귀환시킨 때였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는, 먼저 돌아와 정착한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보고 받고 충격을 받고 마음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기도한다. 조상들과 우리의 죄악으로 우리가 망했으나, 하나님께서 긍휼로 우리를 조금 남겨두시고 보존하셨는데, 하지만 그렇게 겨우 살아난 우리가 또다시 하나님께 가증한 악을 행하고 있다고 탄식하며 애통한다. 에스라의 기도에 나온 이스라엘의 모습과 상황이 내 모습과 상황이었다. 이 3개월이 넘는 위기에서 건짐을 받았으면 다시 하나님께 충성하며 동행해야 할 텐데,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마음이 풀어지려는 것이다.
영화 <쏘우>에서는 직쏘라는 괴인이 인생을 허비하고 자신과 남을 깎아 먹는 사람들을 납치해서 각종 덫에 가둔다. 겨우 탈출하여 삶과 인생의 소중함을 안 사람이 시간이 지나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면 다시 직쏘에게 잡혀 오기도 한다. 물론 하나님이 직쏘 같은 괴인이나 악당은 아니지만.
내가 에스라의 기도에서처럼 부끄러워 주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존재지만, 여전히 은혜로 생존해있기에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아삽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다짐한 바를 나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우리가 누구이고 주께서 누구신지를 인식하며,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원히’란 중단없이 계속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어떻게 건져주셨는지를 끊임없이 기억하며 멈춤 없이 땅 끝까지 전하며 가르친다면, 다른 길이나 이전의 나에게로 새지 않을 것이다. ‘나를 기억하라’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해주셨는가를 기억하고, 찬양하며, 감사한다면, 더는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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