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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아가 8:1-14 | 온전한 사랑이 죽음을 이기고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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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3.12.01.(금)
정리: 2023.12.01.(금)


아가 8:1-14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솔로몬 너는 천을 얻겠고 열매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온전한 사랑이 죽음을 이기고

“사람이 그의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는다.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바꾸기 싫은 귀중한 것. 그래서 무엇보다 귀한 것.

예수님은 이야기로 천국의 고귀함을 비유하신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하고서 남모르게 서둘러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전쟁을 피하거나 포로가 되어 타국으로 이주할 때, 언젠가 귀환하면 되찾으려고 밭에 보물을 묻어두고 떠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재 불명이 되거나 후손이 밭을 찾지 않으면, 오랜 세월이 지나 밭의 원래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게 되면, 발견된 보물은 밭 주인의 차지가 된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를 보니,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보물 사냥꾼들이 활동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팀을 이뤄 위성 장비, 지하와 해저도 살필 수 있는 각종 탐지기, 거대한 굴착기와 다이너마이트 등 비싼 장비와 최신 기술로, 대항해 시대,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등에 누군가가 묻어뒀다는 보물을 찾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따라 돈과 힘과 시간을 쓰고 심지어 목숨마저 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저렇게까지 수고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어떤 팀은 실제로 금괴가 저장된 인공 동굴을 발견하기도 했다.

인간 삶의 끝, 그리고 그 너머를 위해선 어떤 수고를 해야 할까. 호흡이 끝나면 무가치할 금을 위해서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영원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부터다. 밭에 묻힌 보화와 그 가치를 알아보고 달려든 사람처럼.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유한해 보인다. 상황과 마음과 생각과 감정의 변화에 따라 요동치거나 잊히는 듯하다. 그래서 여기 영원히 지속하는 사랑이 먼저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다. 우리가 아직 영원에 닿을 수 없는 존재, 실체를 알면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존재였을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롬 5:6-8, 계 3:20).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나,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을 이기고 영원의 승리를 가져왔다. 이 사랑이 이미 곁에 와 있음을 발견했다면, 이 가치를 알아봤다면, 무엇을 해야 마땅할까? 간단하다. 두드리는 소리를 알아들었다면(요 10:27), 문을 열면 된다(계 3:20).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맞이하면 된다(요 1:12).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요 6:29).

 오늘 금요 예배 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내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릅쓴 사랑에, 나 역시 계산 없이 뛰어들 사랑을 회복하셨다. 하나님의 불길 같은 질투가 내 안에 하나님만으로 충만하지 않게 끼어든 것들을 태워 정금만 남기셨다.

요즘 무엇을 하거나 계획을 짤 때 어떻게 하면 유익할까를 나도 모르게 속으로 따졌었다. 하나님께도 이 방법이 유익일 거라고 여기면서. 하지만 그것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건 사랑으로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앞에 무엇이 있어도 괜찮다고. 나도 내 삶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당신께 기쁘게 드릴 수 있다고. 이미 내게 그 사랑을 주셨고, 주시고, 주실 것이니. 그 사랑은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도 미래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어느 것도 끊을 수 없다(롬 8:37-39).

 

 그리고 내 계획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따라가는 것이, 결국엔 나를 향한 최선의 길이라는 걸 신뢰한다. 그러니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고 평안 가운데 기뻐한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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