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0.10., 11., 13.(목, 금, 일)
정리: 2024.10.11., 13.(금, 일)
에스더 4:4-17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우연은 없고, 사랑이 있다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나만 누리며 살거나 간증의 형식을 이용해 자랑하기에 그친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즐거움도 있지만,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도 주어진다.
에스더는 기적적인 과정을 거쳐 황후가 된다. 포로로 끌려온 민족의 딸이 제국 황제의 눈에 들기까지, 여러 사건이 톱니바퀴처럼 물리며 맞춰졌다. 사람의 마음과 역사를 주관하는 거대하고도 세밀한 손길이 아니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났으면 좋을 뻔했는데, 민족 말살의 대위기가 찾아온다. 황제에게 청하여 민족을 구해달라는 삼촌 모르드개의 호소에 에스더가 부담을 느끼자,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은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고 다그친다. 이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각오로 황제에게 나아가기로 했고, 모르드개에게는 민족과 함께 목숨 걸고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일의 결말 역시 우연 같은 일들이 계속 맞물려 극적으로 민족이 구원을 받고 흉계를 꾸미던 대적이 망한다. 에스더서에 기록된 사건들에서 홍해가 갈라지거나 식량이 늘어나는 등의 소위 기적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이란 단어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 같은 필연이 겹치고 겹치며 의의 승리와 악의 멸망을 보여주는 이 서사는,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심을 강력히 증거한다.
내게도 이런 일들이 많다. 그중 한두 가지만 떠올려 보려 했으나, 인생의 작은 순간마다 최선으로 가는 징검다리기에 띄엄띄엄 나열해보려 한다.
어렸을 적 장래희망은 고생물학자였으나, 나는 수학을 싫어했다. 중학생 때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마법 소설에 빠져 해당 출판사 홈페이지 창작 게시판에서 활동하며 소설을 썼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열정적인 담임 선생님께서 칠판 옆에 보조 칠판을 달아 이런저런 공지를 적어두었는데, 어느 날 지역 청소년 문학상 공모전이 있다는 소식을 써두셨다. 중학생 때 활동하던 홈페이지는 운영자의 실수로 날아가 버렸지만, 팬이 내 작품을 복사해서 우편으로 보내줬고, 유일하게 제대로 완결한 작품 하나를 정리했더니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분량과 맞았다. 나는 공모전에서 입상했고, 그때를 기점으로 수학과 갈수록 어려워지는 과학에서 문학으로 길을 정했다. 중학생 때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도 왜 이쪽으로 갈 생각을 못했던 거지? 라는 의문과 함께.
그렇게 방향 전환을 하고 고등학생 시절 여러 문학 관련 대회에 나가며 수상 실적을 모았다(그러다 알게 된 1년 후배 시인이 있는데, 나중에 군대에 가서 외진을 간 국군춘천병원에서 만났다. 전역 후에도 만났는데, 부대에서 한 간부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한다). 고3이 되었을 때 수능 시험에서 지망하는 탐구 영역 과목별로 반을 편성했는데, 하필이면 소위 ‘꼴통반’이 되었다. 고1 때부터 유명한 일진들이 같은 과목을 지망하여 한꺼번에 같은 반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반에서만 ‘적성검사’라는 시험을 단체로 준비했다. 주로 인하대와 아주대에서 치르는 수시 전형이었다. 적성검사 시험 1교시는 국어‧한문‧역사‧영어 등이 혼합된 문과 계열 문제였고, 2교시는 수리 추론, 도형, 공간 지각 등 이과 계열 문제였다. 나는 1교시는 그럭저럭 해결했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인 2교시에는 벽을 느꼈다.
그래도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목표는 수능, 즉 정시였고, 건방지게도 나는 인하대와 아주대를 ‘지방대’ 취급했다. 그러다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 친구 아들이 인하대 수시를 지원했는데, 어차피 수능 보고 수시 치르는 거니까 일단 지원해두라고. 그래서 지원은 해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수능을 망쳤다. 1교시 국어에서는 원점수 100점 만점에 97점이 나왔지만, 점심 먹은 게 잘못됐는지 3교시 외국어(영어)에서 평소보다 10-20점이 떨어졌다. 어찌 된 일인지 지망 대학에서 반영하지 않을 2교시 수학에서 고등학생 내내 받아왔던 점수 중 개인 최고점이 나왔다. 그리고 탐구 영역이 뒤죽박죽이었다. 모의고사 내내 만점을 받던 어떤 과목은 정작 수능에서 5등급이 나와버렸다.
수능 점수는 수능 점수대로 두고 지원해두었던 인하대 수시 적성검사를 준비했다. 서점에서 교재를 한 권 사서 봤으나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에 옆 반 친구와 길이 겹쳤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이미 수시 1차에 아주대에 합격했었다.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에게 합격 비결을 물으니 한 유명 인터넷 강의 사이트를 알려줬다. 그래서 강의를 신청하고 우편으로 교재를 받았다.
강의는 7강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인하대 시험까지 7일이 남았다. 하루에 한 강씩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강의를 재생하니 강사님이 자신은 2교시부터 수업한다고 했다. 수업을 들으며 교재에 풀이를 적용했다. 게으른 나는 1교시 수업은 듣지도 못하고 기대도 없이 인하대로 향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동안 2교시 문제 풀이 방식을 습득한 것이다. 지금 다시 풀라고 하면 못 푼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하대로 보내셨음을 믿고 열심히 활동했다. 하지만 1학년 겨울 방학 때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의지와 의욕이 없는 채로 살았다. 한참이 지난 나중에야 어느 신문에 적힌 글을 보니,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알았다. 우울하면서도 교만한 채로 2학년을 마치고 선교단체 겨울 수련회에서 기도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하대로 보내신 건 알았지만, 정작 나는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인하대로 보내셨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으니, 하나님께서 캠퍼스에서 예배받기에 합당하시고, 예배받기를 원하시고,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답을 얻었다. 나는 이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군대에서 전역할 때쯤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점심 시간마다 학교 언덕에 모여 기도하던 친구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전역 후 그 친구를 만나러 수원까지 갔다. 그렇게 그 친구를 통해 몇몇 사람들과 연결되었고, 나는 주 3회 수원을 오가며 성경 공부를 했다.
두 달쯤 뒤 인하대에 들렀을 때 동역하던 다른 단체 형을 학교 식당 앞에서 마주쳤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친형이 신천지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때 나도 따로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형이 너도 잘 알아보고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수원에서 배운 성경 공부 내용을 검색해봤는데, 대번에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라는 검색 결과가 나왔다.
나는 수원 신천지인들과 관계를 끊고 있었던 일들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고소한다는 협박 문자가 날아들었다. 심지어 화성 경찰서 정 모 형사가 연락을 해와 고소장을 받느니 뭐니 하며 추궁했는데, 알고 보니 그 경찰이 신천지 신도였다. 당시 정신이 몹시 피폐해졌고 사람도 성경도 믿을 수 없었지만, 선교단체 훈련을 받으며 읽던 책에서 떠오른 성경 구절(암 5:24)에서 故 한진수 형의 비전(겔 47장)이 연달아 떠올라 곧장 마음을 회복했다.
이후 인하대학교 기독학생연합 회장으로 섬기며 캠퍼스에서 예배를 세워나갔다. 회장이 되면서 첫 번째로 했던 기도 중 하나가 이단과는 엮이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학교 역사상 가장 크게 엮인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한 단체에 신천지가 ‘산 옮기기’ 작전을 감행한 걸 우연처럼 안 것부터 시작이었다. 신천지를 탈퇴한 학생이 내가 있던 단체 후배로 들어왔고, 그 후배가 산 옮기기가 실행된 단체에서 부회장과 총무가 신천지 학생인 걸 알려준 것이다. 회장도 포섭된 상태였다.
글이 너무 길어져 다 적을 순 없지만(나중에 정리할 해당 날짜의 묵상을 보면 된다), 나는 한번 신천지에 데였기 때문에 지나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싸워나갈 수 있었다. 또한 신기하고 감사하게도 신천지가 은밀하게 추진하던 모든 계략이 여러 사건과 경로로 나에게 다 접수되었다. 심지어 신천지의 청탁을 받은 인물이 오히려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결국 학교 전체를 협박하기까지 했던 신천지는 되려 학교에서 발붙이지 못할 정도로 크게 활동이 위축되었다.
이후 졸업하는 해 2월에 인하대 근처에서 신천지 학생들이 탈퇴 학생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3월쯤 해당 사건의 재판을 참관하러 갔다가 총신대 이단 상담학 과정을 듣는 동갑내기 청년을 만났고, 그 친구를 통해 지금까지 활동하는 이단 상담소와 연결이 되었다.
졸업하면서 취업한 언론사에서는 군대에서 얻은 지병 때문에 9일만에 퇴사하고, 반년을 방황하다 캠퍼스 선교와 연합 운동에서 동역하던 다른 학교 후배의 소개로 연결된 분을 통해 대안 사교육에 뛰어들었다. 학생들을 만나며 사람을 품는 것을 그제야 배웠다. 나중에는 캠퍼스 사역에 전념하기도 했고, 언론사에서 다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재밌게도, 대안 사교육 업체를 이끌던 분이 내가 캠퍼스 사역을 간사로서 섬긴 기관의 전임자였다.
모든 사건들이 ‘마침’ 다가왔고, 나중에 일어날 일의 계기나 동기, 초석이 되기도 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광야와 전쟁 같던 시간마저도. 억울과 비참으로 점철되었더라도. 길도 답도 안 보였던 때라도. 지나고 보면, 지나고 보면. 그리고 하나님을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고난도 하나님의 큰 그림 안의 한 퍼즐 조각임을 알기에 주께서 파도치는 물 위를 걷듯이 넘길 수 있다. 다음을 모르지만, 과거와 지금과 다음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계 1:8; 21:6; 22:13)께서 선하심을 알기에 나는 안심한다.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재작년에는 사교육 경력으로 ‘때마침’ 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 그러다 작년에 알게 된 분이 있다. 우연 없이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분과의 만남을 주선하셨음을 믿는다. 내 사명과 역할은 이 분이 하나님의 사랑에 안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것. 하지만 내가 잘 감당했는지는 모르겠다. 내 실책으로 나는 인생의 바벨론 포로기를 겪고 있고, 힘에 부쳐 오늘은 코피와 잇몸 피까지 동시에 날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 구내염과 이명도 있고, 피로에 14시간을 내리 잤어도 몸이 풀리지 않는다. 생필품이 떨어져 이것저것 주문하니 재정도 허덕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을 믿는다(빌 1:6). 그분은 나를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에, 그분도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그렇다면 나처럼(?) 하나님을 찾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행 26:29, 고전 11:1; 4:16, 갈 4:12, 빌 3:17). 책으로만은 어려울 수 있다. 나와 그분은 지금 직접 만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그분과 직접 만날 수 있으니, 그분의 기도와 찬양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분이 하나님을 안다면, 나는 그 무엇보다도 기쁠 것이다.
결론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실은 이 결론을 위해 여기까지 써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랑이 여기 있으니(요일 4:10). 사랑이 이긴다.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우리가 이긴다(롬 8:37). 지금 패배하는 것 같아도 최종 승리한다. 그러니 지금 숨어계신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며 나를 사랑하는 것을 믿고 인내하자(습 3:17).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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