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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고린도전서 15:12-19 | 부활을 믿음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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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0.08.-09.(화-수)
정리: 2024.10.09.-10.(수-목)


고린도전서 15:12-1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부활을 믿음

요한계시록에서 완성될 ‘좋은 나라’에는 우리가 이 몸 그대로 살지 않는다. 이전의 땅이 물러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듯이(계 21:1), 우리도 새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 산다. 타락한 최초의 인류가 에덴에서 머물 수 없었듯이, 우리도 죄를 탐하는 육체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그 나라에 있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이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셨다.

신약 성경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을 ‘잔다’고 표현하는데, 마지막 날에 예수님처럼 새로운 몸으로 깨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봐서 알거나, 직접 보지 못했어도 성령으로 알게 되었다. 이전의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음을 알고 또 믿게 되었다. 그래서 죽음에도 초연하고, 영원을 가졌기에 순간과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듯이(요 3:16), 자신의 사람과 생명을 세상에 내어준다. 부활의 소망이 있으니까.

몇 년 전 소셜 미디어에서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걸 지켜본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냐, 부활의 의미만 추출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울은 단호히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믿음은 헛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헛짓거리하고 있는 거라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건 사람들, 순교한 사람들은 멍청하게 살고 죽은 거라고. 쓸데없는 걸 믿고 열심을 내니 불쌍하기 그지없다고. 부활이 없다면.

하지만 우리 몸의 부활과 완성되고 지극히 좋은 나라가 있기에, 우리는 가장 어리석어 보이나 실은 가장 지혜롭다. 죽은 사람이 몸으로 다시 살아났고, 자신들도 그렇게 될 거라는 ‘비과학적’인 걸 믿는 바보들 같지만, 비밀인 진실을 아는 이들은 현명하다.

당연히 이 믿음은 기존의 상식과 충돌한다. 그럼에도 수천 년 동안 전 세계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이 믿음을 갖고 이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셔서 ‘신실하다’고 불리는 하나님께서 부활과 영원을 약속하셨기 때문이고, 부활의 첫 열매로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시간과 거리의 제약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역사의 증인이자 시공을 초월하는 성령께서 알려주셨기에 우리는 알게 되었고 그래서 믿는다. 무턱대고 믿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십자가의 현장성’을 우리 영혼에 새기실 뿐 아니라, 우리와 과거 순간순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셨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알려주신다. 그래서 회개와 감사가 눈물로 터져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를 알고도 나는 부활을 살고 있지 않다.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이전의 내가 요동친다. 짐 엘리엇 선교사는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오늘도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시간과 몸을 허비했다. 그래서 오늘도, 날마다, 내가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길(눅 9:23) 바라며, 바울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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