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0.14.(월)
정리: 2024.10.14.(월)
에스더 5:1-8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에스더가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가니라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하니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에스더처럼
3일을 금식한 에스더는, 이미 곡기를 끊어 죽음을 각오한 채 황제 앞에 나가기로 했다. 이미 황제가 부르기 전에 찾아가면 처형하기로 어명이 내려진 상황이고, 황제는 황후를 한 달 동안이나 부르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전 황후 와스디는 황명을 거스른 죄로 폐위되었다(덕분에 에스더가 새 황후가 되었지만). 당면한 모든 상황이 에스더에게 불리했지만, 에스더는 조건을 따져 계산하기보다 민족을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하기로 했다.
아하수에로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그동안 에스더를 잊었던 듯하다. 한 달 전에 불렀을 때 에스더에게 실망하거나 에스더를 꺼릴 만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잊었든 마음이 닫혔든, 어쨌든 황제는 황후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달 만에 황후가 눈에 들어오자 마법 같은 일이 황제의 마음에 일어났다.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든, 닫혔던 마음이 녹았든, 사흘을 굶어 파리했을 에스더가 몹시 사랑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황제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황후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한다면 으레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주고 싶어 하지 않는가. 비록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말이 정말로 그럴 거라는 선언이 아니라 궁정식 어법이라 하더라도, 황제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불가능한 걸 해내겠다고 다짐하는 표현은 늘 있었다. 80년대식 표현이지만, 달이라도 따다 주겠다고들 하지 않나.
모든 조건과 상황이 에스더에게 불리했지만, 어째서 아하수에로는 에스더를 좋게 봤던 걸까? 그것은 신비다. 사람의 합리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이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큰 그림을 그려가기 위해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황제는 인도 서북부부터 중근동을 거쳐 구스, 즉 북아프리카까지 127 지방을 다스렸지만(에 1:1),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국과 만물은 물론 사람의 속에 있는 마음까지 주관하시고 주장하시는 진정한 만왕의 왕이시다. 황제의 마음이라 해서 예외가 없다.
내가 기다리는 분이 나를 어떻게 마음에 두셨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신비다. 하지만 아직 그분은 나의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못했다. 기도하자는 내 청을 들어주시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침’ 대회도 준비해야 하고, 지금 일하는 곳의 사모님이 한 달에 한 번 하는 생활 단식을 마친 날이기도 하고, 지금 묵상을 하는 공간에 디톡스 물품이 쌓여있고, 대회 준비차 나도 디톡스 물품을 구비해 뒀고, 오늘 본문에 금식하고 나선 에스더가 등장했으니, 미루지 말고 내일부터라도 디톡스로 그분을 위한 금식 기도를 해야겠다. 물론 에스더와 모르드개 등이 한 것처럼 마시는 것까지 끊는 것은 아니지만, 기간은 더 길고(11일을 예상한다) 최근 몸 상태도 매우 안 좋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 밑이 부르르 떨리고, 구내염도 다 가라앉지 않았다. 이명도 남아 있다.
하지만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분이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얻는다면 내가 죽어도 유익하다(빌 1:21). 조금은 두렵지만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 황제가 내린 고기를 거부하고도 윤택하도록 돌보신 것처럼, 내게도 그리하시길 구한다. 주님, 나를 도우소서.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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