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0.07.(월)
정리: 2024.10.07.(월)
고린도전서 14:26-40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방언와 예언의 활용
방언이나 예언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그 자체로 감사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질서와 화평을 해치거나, 자신을 뽐내거나, 상대를 제압하고 조종하려는 은사 활용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존중하기는 어렵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으니, 예언하는 은사자가 질서를 따르고 화평을 이루며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겸손으로 은사를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시의적절하지 않게, 그릇된 의도로 은사를 쓴다면, 은사와 화평을 해친 은사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안 그럴 수 있었는데 그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걸 제가 어떻게 막겠습니까?”라며 책임을 회피할 수 없고, 자신을 범접불가의 사람으로 위장할 수도 없다.
은사자가 존중받으려면, 은사를 내비치는 게 아니라 질서를 존중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 또한 은사가 있다고, 전문가라고 절대적 지위를 가지지 않고, 지체들의 교차 검증과 분별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 좀 배웠다고, 선교단체에서 시야가 넓어졌다고, 은사가 있다고 하여 스스로를 신령하거나 똑똑하거나 앞선 사람으로 여겨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기는 건 금물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방언이나 예언을 금하는 게 아니다. 바울은 앞선 14장 1-12절에서는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했고,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바울이 금한 것은 은사를 통한 자기 주장, 교만, 자랑, 무질서, 분란 등이다. 그는 은사를 활용하여 질서와 교회의 덕을 세울 것을 가르친다. 은사 활용의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은사 활용의 방식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라고 가르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은사 활용을 포함한 모든 것의 목적과 방식을 ‘형제 사랑’이라는 기반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지체들과 형제를 사랑하기에 겸손히 교회의 덕을 세우려 질서 있고 품위 있게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의 흐름이 그렇다. 12장에서는 은사의 남용, 13장에서는 최고의 은사 사랑, 14장은 사랑을 기반으로 한 은사 활용을 다룬다)
나아가 선교와 하나님 나라의 추수를 위해서다. 종류가 다른 방언이겠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임하실 때 사람들이 여러 방언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리고 복음을 전했다. 외국어를 한다면 그 나라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든, 어떤 방언이든, 예언이든,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든, 무엇이든 자신을 자랑하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면 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다(고전 10: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며, 질서와 덕을 세우고, 화평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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