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8.12.12.(금)
정리: 2024.04.12.(금)
열왕기하 10:18-29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의 뜻과 나의 열심
열왕기에서는 죄악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여로보암의 길’과 ‘아합의 집의 길’을 든다. 전자는 물질주의, 혼합주의를 대표하고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꿔치기했다. 후자는 아예 여호와 하나님 대신 다른 신을 섬겼다. 장인이 깎고 부어 만든 우상으로 말이다.
당시의 예후에게 아합의 집과 그 세력이 섬기는 바알은 철저한 타도와 척결의 대상이었다. 그는 열심과 자신감과 분노로 아합의 집과 바알의 세력을 멸하였다. 다시는 이런 ‘잡것’이 여호와를 대신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시위의 목적으로 바알 신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변소를 만들었다. 일은 끝난 것 같았고, 예후는 여호와 하나님의 칭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열심은 자신이 생각한 만큼만 끝장을 보았다. 그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달랐다. 그의 생각의 한계와 하나님의 요구는 달랐다. 그렇지만 예후는 그것을 몰랐고 그 이상은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다 이루었다’고 하고 싶겠지만 그 ‘다’의 폭과 넓이는 제한적이었다. 그는 눈엣가시였던 아합의 집과 바알을 쓰러트렸지만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여로보암의 죄를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하나님의 집’ 벧엘에 마ᄄᆞᆼ히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열왕기나 역대기에서 절반의 개혁을 했던 왕들이 ‘산당을 폐하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는데 반해, 예후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된 걸 보면, 추측건대 예후가 직접 여호와께 제사를 지낼 때 벧엘이나 단의 산당에서 분향했던 듯하다. 바알의 세력을 궤멸시킨 후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뢴다고 금송아지 앞에서 경배드렸을 것이다. 여호와를 위한 자신의 열심을 봐달라며.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과 다르다. 나는 뜻을 정한다고 하며 욕설‧음주 등을 없앴다. 그러나 과연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을까. 나는 얼마 전까지 내가 ‘나’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의 영광과 이름을 위하시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분이지만, 우상을 섬길 때의 중심은 내가 잘 되는 것을 바라는 욕심에서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명예 욕심이 굉장히 강했다. 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처음과는 달리 자대에 와서 군종병을 지원하는 내 마음의 중심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회에 나가면 좀 더 인정해주겠지, 하는. 성경을 묵상할 때 성경이 비춰 드러난 솔직한 내 심경을 적고 있는 지금 나는 부끄럽다. 어제부터 예후가 내 모습과 너무도 많이 겹쳐진다. 뒷장을 넘기기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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