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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군대(2008.10.14.-2010.08.25.)

열왕기하 12:1-3 | 요아스의 신앙, 한국 군인의 신앙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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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8.12.16.(화)
정리: 2024.04.16.(화)


열왕기하 12:1-3

예후의 제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개역개정)

 

묵상 도움글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들을 통해 부흥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지만, 결국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하나님 한 분에 의해 평가받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흥의 순간에 있을 때에도 우리의 믿음 생활에 거품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하며 그 앞에 정직하게 반응해야 한다.

 

나의 묵상: 요아스의 신앙, 한국 군인의 신앙

요아스의 신앙적 배경은 좋았다. 환경이나 여건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합의 집과는 전혀 관계 없는 브엘세바 사람이었다. 특히, 요아스는 유아 시절부터 여호와의 성전에서 쭉 자라왔다. 여호야다 제사장 부부로부터 훌륭한 교육과 예언과 기도를 배우고 받았을 것이다. 여호야다의 혁명 이후에도 그의 가르침은 요아스에게 계속되었다. 여호야다는 참으로 하나님 앞에 순전했고, 왕을 가르치는 자, 길러준 자라고 해서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성경에서의 그나 그의 생전에 요아스의 평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여호야다가 진정 바란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고 다윗 왕조의 보존이었다. 요아스도 여호야다 부부를 부모처럼 여기고 잘 따랐다.

그러나 그가 든든히 의지하던 기둥이 사라지자 차츰 갖은 유혹과 회유에 스며들었다. 바알과 아달랴의 무리라면 치를 떨었을 요아스이기에, 차마 바알을 끌어들이진 않았지만 미신적‧기복적 성격의 산당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여호와입니다’라는 타협적인 말에 속은 것이다. 여호야다가 살아있었다면 율법에 기초해 분별하여 바로 물리쳤을 테지만, 요아스에게는 지혜가 부족했다. 요아스는 엘리사나 여호수아 같은 인물이 되기에는 온실 속 화초였던 것이다. 어릴 적 혁명으로 복권된 다윗 왕가의 혈통이지만 그땐 너무 어려서 전쟁을 스스로 치러냈다고 보기 힘들다. 여호야다가 모든 것을 정리한 후에 그의 교훈대로 나라를 경영하니 만사가 형통했었다. 요아스에게는 시련을 겪을 일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연단을 통해 강해질 수 없었다. 결국 여호야다가 이생을 떠나자 요아스는 신앙의 밑천을 드러냈다.

 나는 모태 신앙이 아니다. 아버지는 교회를 대단히 미워한다. 하지만 고등학교‧대학교 때 나는 좋은 공동체 안에서 자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보호받고 있었다. 그러나 차츰 공동체에서 나를 세상 속으로 밀어 넣을 때 심한 부담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군대에 와 있다. 이제는 부끄러움이나 부담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잡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전에 나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이제는 학교와 교회와 가정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연락은 한다지만 몸이 떨어져 있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요한 사도도 그의 서신에 ‘편지보다는 어서 빨리 만나고 싶다’라고 했고 바울 사도도 ‘누구야, 보고 싶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이들은 유배된 섬과 감옥 안에서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났다.

나는 군대에 와 있다. 많은 형제들이 이 기간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거친다. 더 성장하는 경우, 무미건조한 경우, 바닥을 보이며 옛 사람의 성격이 나오는 경우. 어떤 경우건 군대의 상황은 한 사람의 신앙을 시험한다. 그가 마음을 지키는 예배자인지 판가름한다.

나는 이 기간을 요셉처럼 통과하고 싶다. 자신이 도와준 술 맡은 관원이 자신을 잊었어도 감옥 안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그분의 때를 기다린 것처럼, 이 과정을 통과하려면 힘들지만 낮은 포복으로 기어야 한다. 고개가 뻣뻣하면 걸려서 나아갈 수 없다. 팔꿈치와 무릎이 까져도, 아무도 안 보더라도 낮은 포복으로 이곳을 지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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