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8.12.30.(화)
정리: 2024.04.29.(월)
열왕기하 14:1-7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이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그가 왕이 된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절반의 실패에서 온전함에 이르도록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하 14:4)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온전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고 온전한 마음과 뜻과 예배를 원하신다. 여호와께서 제물을 취할 때 항상 ‘흠 없는’ 것을 강조하신 것도 이 때문이다. 흠이 있다면 완전하신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받고 싶으셔도 다 받으실 수 없다. 조금의 티, ‘내가 생각하기에’, ‘내 소견에 옳기에’ 저지르는 조금의 불순종도 다 흠이 된다. 백지에 점 하나만 찍혀도 티가 나고 백지의 면적이 점보다 훨씬 훨씬 넓어도 시선이 점에 집중되듯이, 흠이란 이렇다.
그렇다면,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예배의 중심을 갖춰야 할까? 의외로 답은 단순하다. 점을 지우면 된다. 그림이 그려졌건 헝클어진 선이 그어졌건 지우면 된다. 단, 지우는 건 백지가 의지적으로 할 수 없으므로 지우개를 불러야 한다. 지우개에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달려와 자신의 몸을 살라가며, 몸을 부비며, 산화하여 백지 상태로 만든다. 이 지우개의 희생과 노력은 놀라워 먹지마저 백지로 만든다. 지우개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걸 아까워하지 않고 다가올 기쁨을 위하여 감내한다. 지우개가 원하는 것은, 백지만 받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께 이 백지가 드려지길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우개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군대, 특히 자대에 와서는 주 하나님께서 내가 입대 전부터 씨름해온 고질적이고 묵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다루시는 손길을 경험한다. 주께서는 내가 올려드릴 온전한 예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토록 나를 받으시기 위하여 불순종과 교만과 사람을 기쁨으로 삼는 것을 깨트리셨다. 부디 내가 다시 견고한 진을 세우지 않기를.
그런데 산 넘어 산이다. 부서지면 부서질수록 더 은밀하고 교묘히 숨어있으며 더 강력한 어둠들이 드러난다. 요즘 겪는 시험은 음란이다. 군대에 와서 극복했다고 생각했고, 전역 후에도 성결한 마음을 지킬 것이라 여겼지만, 그래서 경계를 늦춘 사이 이놈들은 틈을 비집고 침입해온다.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시지만, 이번 싸움은 아무래도 이전의 것들보다 더 치열할 것으로 고려된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 이 성령의 검으로 계속 찔러나갈 것이다. 날마다 나를 죽이고 살아있는 말씀이 내 안에부터 밖으로 뿜어져 나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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