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9.01.08.(목)
정리: 2024.05.10.(금)
열왕기하 14:17-29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간을 생존하였더라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를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그 때에 그의 나이가 십육 세라 아마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더라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싸운 업적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죄인의 괴수에게 임하는 은혜
전쟁에 패배, 포로된 몸, 예루살렘에서의 반역, 도주, 도망 간 곳에서 살해 당함, 관이 아닌 말에 실려온 시신…….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죽은 후에도 나머지 15년 간 아마샤 왕의 삶은 많은 곤고와 환난 그 자체였다. 어쩌면 다윗에게 찾아온 위기들을 겪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곤고와 환난은 다윗에게 시험으로 다아괐고 아마샤에겐 징벌로 다가왔다. 다윗에겐 회개가 있었지만, 아마샤는 성전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어 몸을 고정하는 대신 라기스로 몸을 피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잠자듯 눈을 감았지만 아마샤는 반역의 무리가 보낸 자객들에게 암살당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윗의 길이 아닌 그 반대의 길로 행하였다. 중심의 문제가 두 길을 갈랐다.
아사랴는 아마샤의 아들이었지만 반역의 무리와의 연관성은 나타나지 않고, 다만 유다 온 백성이 그를 왕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었다. 나이가 16세인 것으로 보아, 그가 영특했거나 너무 어려 섭정자가 치리를 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여로보암은 왜 하필 이름을 여로보암이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조상이나 친척 중에 이름을 따는 것이 관례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대표격의 인물의 이름을 따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하나님과는 관계없이 산 여로보암을 따르라는 뜻인 것 같다. 이름을 지을 때는 그 사람이 이름처럼 되라는 소원을 담는데,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여로보암은 멋진 왕으로 보였나 보다. 유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위대한 왕으로. 물론 이 수식어에는 하나님의 관점이 빠져있다.
역시나 여로보암 2세는 선대 여로보암 왕을 그대로 본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하신 말씀이 있기에, 당신의 이름과 공의를 위하여 말씀을 지키신다. 그 동기는 26-27절에 나와 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돌아보심과 돌보심 때문이었다. 참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거역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었다. 심지어 성경은 그에 대한 마지막 평가에서 업적(achievements)이란 표현까지 사용했다.
대학 2학년 때, 무거운 멍에에 메였으나 질질 끌고 가서 ‘하하하 페스티벌’의 단 위에 무릎을 꿇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영적 타격과 깊고 내밀한 죄, 용납의 문제, 교만 등으로 하나님과 섞일 수 없었지만 주님은 나를 놓지 않으셨다. 어쩌면 내가 억지로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그때의 단은 세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필시 음향 장비에 문제가 생기거나, 합심 기도 중 ‘여기에 합당치 못한 자가 있다’는 사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령님의 임재를 밀어내면서도 기도하는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나는 이 이끄심에, 그 목자이신 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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