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9.01.14.(수)
정리: 2024.05.18.(토)
열왕기하 16:1-9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누구를 의지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씁쓸하고…… 슬프다. 거만한 앗수르 왕은 돈을 인하여 움직여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치지 않았다가 다음에는 유다의 청을 들어 이스라엘을 짓밟았다. 여기서 유다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을 이기기 위해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부르지 않았다. 그의 좁은 시야에서 구원은 상황 모면이며, 이 땅에서의 안정이었다. 그래서 비굴하게 앗수르 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경외할 만한 분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다니엘이 그랬고, 엘리야가 그랬으며 모세와 세례 요한,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수께서 그러셨다. 그러나 아하스는 유다 공동체의 왕으로서 보여야 할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임을 망각하고 그 지위를 팔아넘겼으며, 약속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잠시 잠깐의 도움이 될 앗수르 왕을 구원으로 삼았다. 그의 비뚤어진 우선 수위는 그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바친 행위에서 잘 드러난다. 위기의 순간에 마음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이고 왕이고가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아하스는 하나님을 저버렸었다. 3-4절에 걸친 그에 대한 평가는 역대 최악이다. 다윗과 같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지 않고, 단순히 여로보암의 길이 아닌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백성과 섞일 것을 우려하여 쫓아내신 죄악을 들여와 자기 아들을 우상에게 번제로 바쳤다. 또 분향하는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곳곳마다 늘어나 악영향이 유다 전역에 퍼졌음을 보여준다. 자기 아들까지 죽일 정도면 아하스가 얼마나 이방 신에게 빠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또 분노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을 막아냈음에도 앗수르 왕을 움직여 아람과 이스라엘을 철저히 짓밟게 하여 결국 아람 왕 르신이 죽는다. 복수를 위해 안중에도 없고 괜히 재정만 축내는 것 같은 여호와의 성전 물품을 겁도 없이 빼냈다. 이 성전이 그의 조상 다윗과 솔로몬이 염원하고 공들여 지은 것이라는 사실을 과연 그가 알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앗수르는 돈에 따라 움직인다. 이러한 도움은 경우와 조건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게다가 미시적이다. 아하스는 불변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몰랐다. 그의 조상 다윗이 ‘눈을 들어 산을 보리라, 나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여호와께로다’(시 121:1-2) 라고 노래했던 일을 저버리고 이상하게도 적대하던 이스라엘 여러 왕들의 길을 따랐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아람이 엘랏을 정복하여 유다 사람들을 쫓아내었고, 성경 본문 기록 당시까지 아람인들이 거주하였다. 이스라엘이 끌어들인 아람은 하나님의 백성을 몰아내고 아예 거기에 정착하였다. 죄의 속성도 이와 같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뿌리를 깊이 내린다. 애초에 이스라엘은 아람과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
……이스라엘이건 유다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음과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을 섬기는 이방의 나라들에게 구원을 청한 것은 동일했다. 이 세상의 방법과 원리를 언제나 깰까.
이러한 아하스에 대한 비판, 하나님을 찾지 않고 눈에 든든하게 보이지만 가변적이고 영원하지 못한 것을 의지함, 이를 내가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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