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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열왕기하 23:15-20 | 죽어도 살겠고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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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6.19.(수)
정리: 2024.06.20.-21.(목-금)


열왕기하 23:15-20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죽어도 살겠고

처음 소송장을 받은 다음날인 5월 중순이었을 것이다. 길을 걷는데 곁으로 차 한 대가 쌩하고 지나가기에, 몇 가지 나쁜 생각이 들었다. 저 차에 치여 사라지고 싶다거나, 치어도 살되 배상금을 3,000만 원을 받아서 내 소송비를 감당하고 싶다는. 하지만 운전자는 무슨 죄인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각도 아니란 마음에 금세 도리질을 쳤다.

그리고 오히려 평안이 나를 지배한 한 달이 지난 오늘 아침에 일하는 동안 찬양을 들으며 기도하는데, 나의 전적 무능에 관해 생각하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자신을 낮추어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왕상 3:7)한다고 표현한 게 무슨 뜻인지 가늠했다. 전에는 이 말이 자신을 5-6세 정도의 아이처럼 미력한 존재로 여기는 겸손의 표현인 줄 알았다. 오늘 든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면 죽어버리는 신생아나 영유아처럼 무력하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생각은 2007-2008 경인 IVF 겨울 수련회 마지막 날 새벽 홀로 강당에서 기도하던 때로 이어졌다. 5박 6일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기도가 안 되던 수련회였다. 그래도 하나님 만나야 한다고 한밤중에 집회 장소로 내려와 웅얼웅얼하다가 잠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선배가 새벽에 나를 깨웠다. 홀로 남은 그제야 찬양을 하며 하나님을 재발견했다. 나는 회중석에서 걸어 나와 강단에 섰다.

내게 두 가지 이미지가 보였는데, 하나는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었다. 그는 귀족이었지만 유령, 즉 죽은 존재였다. 다른 하나는 갓 태어나 피투성이인 채로 울고 있는 아기였다. 당시 나는 허영심과 겉치레를 내려놓고, 살고 싶다고 기도했다. 에스겔 16장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아기 같은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고 하셨기에.

오늘 본문에는 요시야 왕이 북이스라엘 지역에서도 개혁을 단행한다. 그는 산에 있는 무덤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산당과 제단에서 불살라 더럽혔다. 시신이 닿으면 부정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2009년 2월호에 기록된 『IVP 성경 배경 주석』을 보니 흉악범들의 시신이라 한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이스라엘과 유다 선지자들의 뼈는 온존시켰다.

에스겔 16장에 비유된 이스라엘은 근본 없이 태어나자마자 길가에 버려진 아이 같은 존재였으나,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거두시고 씻기며 좋은 것으로 먹이고 입혀 기르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온갖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히고 하나님을 저버렸다. 그래서 에스겔 37장에서 비유된 이스라엘 족속은 죽은 지 오래어 바싹 마른 뼈들이었다.

내가 이와 같다. 죽은 자 같고, 죽어서도 불명예스럽고 더러운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죽어버린 마른 뼈에게마저도 새 살과 근육을 조성하시고, 생기를, 새 영을 불어넣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군사들로 세우신다(겔 37장). 호흡 없던 흙덩이에게 태초의 숨을 불어넣으신 것처럼.

어제 법원에서 판결 선고 기일이 나왔다는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합의 중인데 무슨 선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오늘 법원에 전화해보니 답변서를 제출하라고 하며 이러저러한 절차를 알려준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잘만 하면 전액으로의 합의가 아니라 상당액을 감액한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준비 과정을 생각하면 갑갑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도와주신다면 넉넉히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전의 기회를 주신 게 맞을까? 다윗이 숨어있던 굴에 사울이 모르고 들어온 것과 같은 건 아닐까?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인 줄 알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는 것은 물론 몸에 손을 대지 않는 게 하나님의 법도라는 걸 알고 사울을 건드리지 않았다.

반대로, 시간을 끌며 내가 대응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청구한 금액 그대로 선고되길 기다리는 원고 측을 제지하는 하나님의 방도인 건 아닐까? 모르겠다. 어떻게서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바란다. 그가 나를 환난에 두기도 하시고, 피할 길로 인도하기도 하신다. 그런데 내가 구하는 것은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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