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6.22.(토)
정리: 2024.06.23.(일)
열왕기하 23:36-24:7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요시야 왕이 놓친 것
요시야는 국가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회복하고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백성들에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도록 한 훌륭한 왕으로서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준수하지 못했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하지 못한 결과는 그 자신의 급사와 국가 기틀의 붕괴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 또한 일부일처(창 2:24)를 지키지 않고 여러 아내를 둔 까닭이다. 그가 이미 여러 아내를 두었을 때 하나님의 율법을 발견했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하나님의 규정을 알고도 그랬다면 문제가 있다.
어쨌거나 성경에서 일부다처 집안에서는 항상 문제가 발생해왔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시야와 립나 예레미야의 딸 하무달 사이에서 낳은 여호아하스는 악행 끝에 이집트로 끌려 갔다. 요시야와 루마 브다야의 딸 스비다 사이에서 낳은 여호야김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시달리다 정세 판단을 잘못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요시야의 장인들 이름에 지역명이 붙는 걸 보아 요시야도 지방 호족들과 정략결혼 관계를 맺은 듯하다. 그 조상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요시야는 ‘바깥 나랏일’을 하느라 집안 대소사와 자녀 교육에 소홀했고, 하나님께 관심이 적던 어머니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여호아하스의 이름 뜻은 ‘여호와께서 붙드셨다’, 야호야김의 이전 이름은 엘리아김의 이름 뜻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인데, 자녀를 낳고 이름에만 하나님을 집어넣는다고 믿음의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날에도 아이를 낳고 이름에 하나님의 ‘하’나 예수님의 ‘예’를 많이들 넣지만, 아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는 건 이름이라기보다 부모의 양육이 어떠한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요시야를 전사시킨 이집트는 기세 좋게 바벨론과 맞섰으나, 대패하여 더 이상 제국의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영토도 제한당한다. 이때의 패배로 이집트는 21세기 현재까지 역사의 중심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 중근동의 패자였고 앗수르와도 균형을 이루었던 이집트를 몰락시킨 바벨론은 새로운 제국으로서 유다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강제로 이집트를 따르다 또 강제로 바벨론을 따르게 된 여호야김은, 무슨 판단에서였는지 바벨론을 배반한다. 바벨론은 이미 복속시킨 중근동 여러 나라의 부대를 일으켜 유다를 공략한다.
여호야김의 판단은 아버지 요시야처럼 하나님께 물어 순종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받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적은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불태우기까지 했고,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처럼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악한 왕이었다(렘 36장).
유다 국가가 환난을 겪는 원인을 열왕기는 왕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멸시하며, 사랑으로 섬겨야 할 백성들을 오히려 괴롭히고 죽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도 실은 그러해서다. 요시야의 개혁에도 하나님은 유다 멸망의 뜻을 돌이키지 않으셨는데, 나는 스스로마저 개혁하지 못하고 있는 걸 오늘 새벽에 알았다. 어느 정도 하나님께 회개했다고 여긴 게 나를 나태하게 한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한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했는데(고전 10:12).
나는 요시야처럼도 못하고 안팎으로 부패한 존재다. 이런 내가 하나님께 이 환난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할 자격이 있을까. 오직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흘리신 피를 붙들고 엎드릴 뿐이다. 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와 자비를 베푸소서.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개역한글)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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