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6.26.(수)
정리: 2024.06.27.(목)
열왕기하 24:18-25:7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바벨론 포로기를 끝내려면
시드기야는 요시야와 하무달의 아들이자 여호아하스의 형제였으나, 성경은 그가 이복 형제인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기록한다.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했듯 시드기야도 바벨론을 배반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에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2년 가까이 포위하고 말려 죽이려고 한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하며 나라의 독립과 결사항전을 외쳤겠지만, 성내에 기근이 들고 성벽이 무너지자 성을 지켜야 할 군사들과 함께 백성을 버려두고 도망친다. 그마저도 바벨론 군대가 추격해오자, 이번에는 군사들이 왕을 버리고 도망친다. 결국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붙잡힌다.
시드기야가 나라보다 자신을 위한 왕이었다는 건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2009년 2월호의 설명에서 인용한 예레미야 38장 17-19절과 그 이하 구절들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지만, 백성들에게 조롱당하고 체면이 깎일까 봐 망설이다가 순종하지 않는다. 그는 끝까지 지키지 못할 영웅심에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그 일가가 패망한다.
얼마 전 나는 요즘 광야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기를 겪고 있다고 적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몰락과 바벨론 포로 경험이 구약 역사를 통틀어 최저점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한다. 과연 내 인생의 최저점이 될 만한 시기다. 하지만 최근 읽기 시작한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유석경 저, 규장)의 초반에 인용한 이사야 38장 17절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과연 그러하시다. 내게 이 말씀을 경험으로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니, 그 평안이 실로 절대적이다.
금요일에 답변서를 제출하고 원고 측 변호사를 만나려고 했는데, 그래서 목요일에 답변서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수요일인 오늘 몇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꿈의 재현 같은 누군가의 방문이었다. 아침에 꾼 꿈에서 나는 군인 양성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다른 선임병이 특수 부대 시험에 지원할까 망설이는 사이 내가 몰래 지원했다. 그러자 어느 연상의 여성이 학교를 찾아와 나를 불러내 따라오라며 시골길을 이리저리 돌았다. 그러다 어느 허름한 집터 같은 곳의 바닥 구덩이에서 꺼낸 옷가지를 던져주며 입으라고 했다. 나는 옷의 치수를 보고 몸에 맞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입어보라는 종용에 바지를 입어보니 딱 맞았다. 그리고 아쉽게도 꿈을 더 진행하지 못하고 깼다. 현실에서는 오랜만에 기도 제목인 분께서 방문하여 주셨다. 하지만 짧게 머물다 인사도 없이 가셨고, 선물도 두고 가셨다.
그리고 그분의 다른 가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과격한 어투와 과시, 자신의 뜻이 옳으니 관철해야 한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하지만 내 부친이 겹쳐 보여 안쓰러웠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를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었다.
조정으로 가느냐 합의로 가느냐의 길목에서, 통화 덕분에 다시 알아봤더니 법원이 조정을 해도 원고가 이의신청을 하면 조정이 무효가 되고 소송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면 합의가 결론인데, 온전히 내가 합의금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전화 주신 분께 다시 연락을 드려 감사를 표해야겠다.
한편 일하는 곳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어떤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한참을 앉아 계셔서 매장에 있는 전도 건빵을 들고 가 말을 걸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여의도순복음교회 권사님이라고 하셨고, 이 근처에 살며, 매장에서 일하는 목사님 부부를 알고 계셨다. 짧게 대화하고 일어서려는데, 문득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기도 제목을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권사님께서 갑자기 우시려고 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껏 병원비로 900만원을 들였는데, 병원에서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더니 허리뼈가 휘어서 고칠 수 없다고 했단다. 정류장에 앉아 있는 것도 길 가다가 허리가 아파서 쉬는 거라고 했다.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고, 나중에 내가 아는 한의원에 모실 수 있을까 하여 연락처를 교환했다.
기도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는 야고보서 5장 16절이 떠올랐다. 나는 결코 의인이라 말할 수 없지만, 기도와 섬김으로 권사님의 허리가 나으면, 주께서 나를 다시 쓰시겠다는 표시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바벨론 포로기를 끝내고, 다시 복음을 살아내는. 불순종의 최저점에서 순종의 최고점으로.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저번에 한의원 행사 때 경품으로 받은 허리 보호대가 보였다. 그 당시 묵상을 기록하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는 말씀을 함께 적었는데, 이 허리 보호대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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