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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군대(2008.10.14.-2010.08.25.)

요한복음 1:1-14 | 빛의 증언자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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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

작성: 2008.12.25.(목)
정리: 2024.04.25.(목)


요한복음 1: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빛의 증언자

요즘 몇 가지 주제의 묵상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세례 요한이다. 기억이 맞다면 2007년 1월 14-15일 평양대부흥을 맞아 열린 28시간 기도회에서 처음 받은 소명의 외침이 있었다.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 나중에 찾아보니 문장 내에서도 주님을 앞에 두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노트를 뒤져보니 12월 21일에 비슷한 묵상을 했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는 말에는 내 이름을 낮추고 숨긴다는 말이 전제로 깔려 있고, 이 두 문장은 시소 관계를 갖는다고. ……아, 이것이 세례 요한의 고백이었구나.

어제 끄적인 메모 중에는 성탄 전야 예배에서 조명을 끄고 켜는 일을 맡을 때 깨달은 것도 있다. 『어린 왕자』에서의 등대지기처럼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일을 묵묵하게 수행하는 것. 과거 역곡동교회 중고등부 <코이노니아의 밤>에서도 핀 조명을 맡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에 이르자 내 자리가 확인되었다. 저 뒤편에서 성탄의 주인공을 비추는 자리. 나는 빛이 아니다. 나는 내 자리에서 빛을 쏴줄 뿐이다. 빛이 닿은 자리에 어둠이 물러갈 것이다. 나는 이 빛을 말하고 어떠한가를 행함으로 보인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IVF 전국수련회 <RUN 2008> 주제인 섬광(섬기는 빛)은 열려 있는 현관문을 닫고, 팽개쳐 있는 샤워기를 제 위치에 걸고, 교회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에서 발한다.

아기 예수께선 탄생 때 가족과 이방인들만의 축복을 마굿간에서 받으셨다. 자리가 높건 낮건 난 예수님과 함께하면 된다. 이방인이었던 나는 다시 오실 주님께 열매를 드리며 경배할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꾸준히 섬기다 보면 더 막중하고 힘든 섬김의 자리가 오게 될 것이다. 이는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발하고 나는 더욱 더 쇠하여야 하는 힘든 작업일 것이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보다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주어진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세례 요한의 삶과 죽음을 본받기 힘쓰는 것이다. 내 삶을 그에게 맞춘다. 그가 기뻐한 것이 나에게도 기쁨이 된다. 그의 삶의 자세가 나의 삶의 자세가 된다. 이를 위해 세례 요한은 성령님과 교제하며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리스도를 닮는 길을 택했다.

이건 나의 결단이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채워주셔야 한다(요 1:14). 아니, 어쩌면…… 전적으로. 그가 모든 걸 행하신다. 나는 기쁨으로 말씀만을 졸졸 따라갈 뿐이다. 내가 앞을 내다볼 수 없어도 상관없다. 그는 선한 목자고, 나는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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