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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한 예배 - 『정의를 위한 용기』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5.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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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26.(금)

 

얇은 책에서도 특히나 6쪽으로 짧은 이번 장(5장 - <정의를 위한 예배>)이지만, 오스뮴처럼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 한국 교회와 관련하여 떠올려본 연결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교회가 책에서 말하는, 아니 성경이 말하는 정의와 정의의 하나님에 무지하고, 그 때문인지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교회에는 사랑이 넘친다. 교회는 구제와 봉사, 섬김에 한국 사회 그 어느 기관보다 앞서 있고, 진심이며, 다수가 다량으로 참여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이웃으로 여기며 자신을 내어주고, 이를 위해 국가 기관과 척을 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왜 가난하고 소외되었는가를 물으며 억압자의 그늘을 발견할라치면, 그 방향으로 난 문을 딱 걸어 잠근다. 이 분야는 기독교의 영역이 아니란 듯이. 물론 여전히 그 자리에는 예수께서 계시고, 주께서는 닫힌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핍박받는 이들을 구하여 보호할 자리로 함께 나아가 이들과도 더불어 먹자고 하신다.

사랑만 하고 싶고, 베풀고 싶지만 드러난 악의 실체와 맞서는 것에는 고고한 듯 점잖은 척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오병이어를 나누며 식사를 나누고 싶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인들을 몰아내신 예수님의 울분을 자신의 울분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것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이지 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인생과 세상 모든 영역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믿지 않고 근대 서구 사회에서 학문을 구획화한 사고의 틀에 갇혀 있으면서 갇힌지도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는 하나님마저 솔로몬 재판에서의 아기처럼 반으로 나누려 한다. 설교와 찬양에서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노래하지만, 의의 하나님, 하나님의 의는 턱없이 부족하게 이야기하고 노래할뿐더러, 사랑을 다루는 것에 비해 의가 어떤 의인지, 의의 구체적인 사례와 적용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의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파고들지 않는다. 그러니 아예 관심 밖 영역이 되어 미지의 분야로 남는다. 한국 교회에서 의는 좁은 문이고, 길이 협착하여 가는 성도가 적다.

둘째는 한국 교회 일부가 정의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그릇된 지향을 하는 것이다. 진리와 진실을 추구해야 할 성도들이 거짓과 정파성에 매도되어, 당황스럽고 황당한 열심을 내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동굴의 우상에 갇혀 실체가 불분명한 세력의 그림자를 키워 두려워하고, 이를 막겠다고 자신과 반대편에 속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악마화하며, 반대로 자신의 편에 속한 이들이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심지어 반기독교적, 반성경적 성향을 표출해도 옹호하고 영웅시한다.

이들은 애국이니 수호니 순교니 하는 구호로 피를 끓이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원수 사랑은 배운 기억도 지운 채 특정 세력이 악마화한 이들에 대한 증오로 활동의 동기와 동력으로 삼는다. 첫째 사례가 성경을 반만 배웠다면, 이 둘째 사례는 성경을 왜곡하거나 다른 가르침을 성경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특정 인물과 세력을 지키고 반대편을 멸하는 것이 복음이고 성경의 가르침이다. 중세 십자군의 광기가 서북청년단을 거쳐 이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이들이 실질적으로는 기독교와 정치 편향성을 뒤섞은 혼합주의 이단이며, 심지어 정치 편향성을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한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또는 정치 편향성을 신앙보다 우위에 두고 믿는 바알 우상 숭배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신생 국가 이스라엘을 편들고 팔레스타인을 구약 시대 명령처럼 다 죽여야 한다고 말하며, 21세기에도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고, 서부지방법원을 폭력으로 때려 부수고 판사를 해치려 한 폭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들은 특정 교회 출신의 청년들, 집사들, 전도사들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이 수호한다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 정치인이 파면되자 그를 재집권시키겠다고 열심이 특심이다. 상식과 기본적인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은 거짓 정보로 뇌가 뒤집히고 분노로 눈이 뒤집혀서 일반적인 대화로는 통하기 어렵다. 어렵겠지만 이단 상담이 필요한 경우라 본다.

존 스토트는 『온전한 그리스도인』(IVP)에서 ‘인격, 소명, 참여, 윤리, 선교’의 전 영역에서 성경과 성경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온전한 주되심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을 강변한다. 스토트가 “법률가의 날카로운 눈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진정한 제자의 민감한 영을 모두 지녔다”고 칭찬한 ‘온전한 그리스도인’ 게리 하우겐은 이번 장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하나님께 거슬리는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무엇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예수님이 알려 주신 기본적인 가르침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 교회는 사랑의 하나님과 아울러 의의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반쪽짜리 그리스도인으로 불완전하게 존재해서도 안 되고, 어긋난 그리스도인으로 망가져서도 안 된다.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야 한다. 하나님의 의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일구며.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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