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7.10.10.(수)
정리: 2022.08.03.(수)
출애굽기 1:1-14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부흥을 위한 씨앗
이 땅에 그리스도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핍박이 있다가, 6‧25 전쟁 이후 사람들은 선한 시각으로 그리스도교를 바라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부흥을 ‘퍼붓듯이’ 주심으로 1900년대 초부터 70-80년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는 최초의 엄청난 핍박으로 인한 피 흘림, 밀알의 죽음으로 맺은 열매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또 다른 유형의 핍박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핍박이 있어 왔다. 여기서 통탄할 점은, 우리나라에서 예수님이 멸시받는 출발점이(지금은 그 자체로지만) 예수님의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의 악행 때문이었다. 본문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집권자가 된 모습도 아니며, 오히려 ‘교회 다닌다’는 이들이 주요층에서 하나님을 능멸하고 있다.
믿음의 용사들의 피로 가꾼 이 땅에서 쭉정이 믿음들이 자라났다. 핍박 가운데 맥을 못 추고, 1,000만, 많게는 1,200만이라 불리던 기독교 인구가 860만대로 떨어졌다.
이 때에도, 사도 시대에도 핍박 가운데 더욱 복음의 물결은 흥왕하여 갔다.
오늘날 이 시대에, 히브리 산파처럼, 오바댜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목숨 거는 자들을 주께서 일으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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