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3.01.06.(금)
정리: 2023.01.06.(금)
출애굽기 2:1-10
레위 가문의 한 남자가 레위 가문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자가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 남이 모르게 석 달 동안이나 길렀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를 구하여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 두었다.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 보고 있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대 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 오게 하였다.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그 때에 그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바로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 바로의 딸이 대답하였다. "그래, 어서 데려오너라."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 왔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나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삯을 주겠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젖을 먹였다. 그 아이가 다 자란 다음에, 그 여인이 그 아이를 바로의 딸에게 데려다 주니, 공주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공주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다. (새번역)
나의 묵상: 헌신자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을 향해 목숨을 걸 때,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시기도 한다. 물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다.
레위 가문에서 태어난 사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한다. 자신의 험난한 미래를 미리 알았더라면, 욥처럼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면 좋았겠다고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선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기른다. 파라오의 엄명에도, 아이가 ‘보기에 좋았’던 것이다. 주석은 새번역 성경에서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의 원어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을 보시고 말씀하신 ‘좋았더라’와 같은 단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희생하시고, 아이의 부모도 목숨을 걸고 아이를 지킨다.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갈대 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발라 아이를 상자에 넣고 강가에 둔다. 일단 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하고, 강물이 범람하더라도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게 하고, 악명 높은 나일악어가 보더라도 안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눈치채지는 못하게 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아이의 부모가 노아의 방주를 떠올렸는지, 하나님께 기도하다 지혜를 받은 것인지, 당시에 히브리인들이 아이를 조금이나마 살리려고 썼던 방식을 따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이의 부모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마침’ 파라오의 공주가 그쪽으로 오게 하셨다. 하나님을 닮은 긍휼을 보유한 공주는 이 아이가 부왕의 명으로 버려진 히브리 아이인 걸 알아보고는, 아이를 입양하기로 한다. 아이의 이름도 그녀가 지어주는데, 모세라는 이름은 힉소스 민족을 몰아낸 새로운 왕조의 파라오들 이름이었다. 아모세 1세, 투트모세 1세 등이 그들이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아이의 어머니로 나선 그녀의 이름은 하투셉수트로, 아버지 투트모세 1세가 죽고 이복 남동생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하고 병약한 남편을 대신해 이집트를 통치한다. 남편 사망 후 딸과 6살인 투트모세 3세를 결혼시키고 왕위에 올렸지만 통치는 그녀가 이어간다. 이때까지는 모세를 건드릴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모세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왕족의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트셉수트가 죽고 그녀의 그늘을 증오하던 투트모세 3세 때는,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도 그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자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친다. 40년 후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왔을 때는 아멘호텝 2세와 마주한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 정합성은 스위스 시계보다 뛰어나며,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시계와 달리 사람을 경탄케 하고, 개인사와 세계사를 엮으며 합치시킨다. 오늘도 오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오늘이 쌓여 언젠가의 어느 날 하나님의 때(Kairos)가 들어맞는 걸 목도할 것이고, 목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다. 그래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시편의 외침에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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