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0.22.(화)
정리: 2024.10.22.(화)
고린도후서 1:12-24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온전한 순종으로 영광을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 라오디게아 교회가 충성을 다하지 않고 절반의 순종을 하며, 선한 사업을 하면서도 이면에 다른 동기와 욕망을 반영하는 등 참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고린도후서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않고, “예”만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예수께서 “아니”라 하지 않고 “예”라고 하며 수용하고 순종했다는 것이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히 5:8-9) 예수님의 순종은 한 점의 거부 없는 온전한 순종이었고, 아버지의 뜻이 고난일지라도 원하는 순종이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바울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예” 하시면서, 미쁘신(faithful)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를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기에, 우리가 받은 구원에는 “아니”가 없다. “그(예수)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 하나님의 약속(요 3:15)은 페르시아 제국의 인장을 찍은 조서보다 더 유효하고 철회되지 않는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죄가 많아서 구원에서 탈락할 것 같다는 “아니”의 불신을 버리고, 구원의 근거를 나에게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도장 찍으신 하나님께 찾아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도 말한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정하신 그리스도에 “예” 하는 모두를, 하나님께서 “아니”로 거부하시는 것 없이 “예”로 받아들이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듭나는 것부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나아가 예수께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신 것처럼, 라오디게아 교회에 바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모두 “아멘”으로 순종해야 한다. “아멘”이라는 말의 뜻이 ‘참으로’, ‘진실로’, ‘확실히’, ‘그렇습니다’ 등의 뜻이니까, 어떻게 보면 “예”를 강조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예”가 되어 받아들여졌듯이, 나도 하나님께 거부하는 것 없이 “예”로, “아멘”으로 수용하고 순종해야 한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기도 하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또한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울지라도(골 1:24), 그것이 지금 내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 3:17)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9)
그런데 이를 내게는 엄격하게 적용하더라도, 믿음 안에 있는 제자들이나 후배들 등 남에게 가르칠 때는 온유와 겸손으로 해야 한다. 남 위에 서서 남의 믿음을 주관하려 해선 절대 안 된다. 바울은 성도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고 싶어 했다. 진정한 기쁨이 주님께 있고 주께 순종할 때 참 기쁨이 피어나기에, 이 기쁨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주께 온전히 순종하고 주를 알아가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의 춤이 되는 것을 볼 것이다(시 30:11).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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