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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고린도후서 6:1-10 | 하나님의 사역자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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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0.26.(토)
정리: 2024.10.26.(토)


고린도후서 6:1-10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의 사역자

바울 일행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동역자(God’s co-workers)요 하나님의 일꾼(servants of God), 즉 사역자로 자천(自薦)한 자들로 소개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서 폼나게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말재간과 권위로 사람들을 지휘하지 않았다. 도리어 매 맞고, 옥에 갇히고, 굶고, 못 자고, 쫓기고, 시달리고, 배가 깨져 바다에 빠지고, 독사에 물리는 등 온갖 고초를 당했다.

현대 교회 문화에서 ‘사역자’라고 하면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신학을 연구하며 말로 설교하는 교회 전임자를 쉽게 떠올린다. 이들은 목사‘님’ 소리를 들으며 성도들의 대접과 존경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호응에 취하면 과거 예수님께 비판받던 바리새인과 똑같이 되어버린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상석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했으며,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중히 여겨 겉으로의 형식을 강조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

본디 사역자란 말은 배에서 노를 젓는 격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바울이 쓴 헬라어 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는 합성어로, (배) ‘밑’에서 ‘뱃사람/노를 젓는다’는 뜻이다. 단순 반복 작업이면서도 무척 고되고, 배가 위기에 처하면 가장 먼저 죽을 위기에 처하는 일이다.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는 노예로서 로마 해군 범선의 노를 젓는다. 영화의 설명으로는 보통 격군 노예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현대 한국 사람들에게 좀더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자면, 이순신 장군을 다룬 <명량>, <한산>, <노량>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갑판 아래 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북소리와 구령에 맞춰 손에 피와 물집이 터지도록 노를 젓는 장면을 기억해 보라.

바울이 말한 일꾼, 사역자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배 안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함께하는 노예들과 죽을 고생을 하며 합을 맞춰 배를 나아가게 하는 사람들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사역자의 인생 사방은 어두컴컴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관이 좌현! 우현! 외치는 듯한 주의 말씀을 등불처럼 의지하여, 무의미해 보이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노를 계속 젓다 보면, 주께서 예비하신 목적지인 푸른 초장의 항구에 다다라 안식과 상급을 누릴 것이다.

그래서 사역자가 이 땅에서 수고하며 인내할 때 중요한 자세는 ‘마음 지킴’(잠 4:23)이다.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아프고 목마르고 배고프고 졸리더라도, 깨끗한 마음과 거짓이 없는 사랑과 의와 진리를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써 지켜나가는 것, 오히려 이를 전하여 확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행실로 복음을 남에게 거리끼고 비방을 받게 했다. 누군가는 나와 교회를 평생 원망하여 싫어할 수도 있다. 나는 실패자다.

그러나,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내게서 복음의 증인 역할을 박탈하지 않으셨다. 행위가 온전한 게 없어 이름만 살았지 실상은 죽은 사데 교회(계 3:1-2) 같은 나를,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하고 전하게 하신다(시 118:17). 나는 안정적인 직장도 사회적인 미래도 재산도 없지만, 주의 말씀을 전하여 사람들의 목을 조금이나 축이고 있다.

주께서 내게 있을 고난이 앞으로는 내 실책이 아니라 선을 행하다 받는 고난만 있게 하시고, 내가 섬기는 이들이 바울 같이 달려 언젠가 모두 함께 주의 영광에 이르기를,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승리와 재림의 광휘로 본을 보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청 드린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사역 후원 및 자율 헌금: 하나은행 748-910034-8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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