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3.09.06.(수)
정리: 2023.09.10.(일)
로마서 8:19-30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맞을까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의심한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는 그다지 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사고를 치고, 하나님께서 뒷수습해주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음으로는 하루에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을 하나님을 떠나 육신의 일을 따른다.
그러나 로마서는 선언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내 마음에 여전히 부끄러움이 남아있는 건, 중심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해보니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과 사라도, 이삭과 리브가도, 야곱과 레아와 라헬도, 요셉도 그리고 무수한 성경의 인물들도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마음에 원하지 않는 바를 행하거나 겪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실책으로 이스마엘이 태어나 민족을 이뤘으나, 하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마엘이 살 길을 열어주셨다. 야곱을 붙잡아두려는 라반의 계략으로 야곱의 아내들이 된 레아와 라헬 자매의 불붙은 경쟁. 하지만 그로 인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시작되었다.
나의 실책과 넘어짐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나님께서 궁극의 선을 이루시는 데에 퍼즐 조각으로 쓰실 것을 믿지만, 그래도 실책을 더 이상 범하고 싶지 않다. 자초한 사태가 터지고 숨통을 조여오는 압박감을 더는 겪고 싶지 않다. 나는 구속을 기다리는 피조물처럼 탄식한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신다면 정말로 나를 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성화를 거쳐 영화롭게 하시기를. 내게서 주의 영광과 빛을 발하사 나를 통하여 죄와 실책이 아니라 주의 복된 소식이 아름답게 전파되도록, 전파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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