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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07-2008.10.13.

마가복음 12:41-44 | 과부의 선택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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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8.09.29.(월)
정리: 2024.02.10.(토)


마가복음 12:41-44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과부의 선택

당시 과부는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처해 있었다. 서기관들은 가뜩이나 없는 과부의 재산을 긁어냈다. 이 과부는 경제적으로도 낮은 자였다. 아니, 너무 가난했다. 두 렙돈은 그녀의 생활비 전부였다, 그녀는 ‘poor’했다. 가난하고, 가련하였다. ‘빈궁했다.’ 그러나 과부는 없는 중게 모든 것을 넣었다.

승자의 기독교, 강자의 기독교, 근육질의 기독교가 이 사회를 독식해왔고 이제는 비난을 받고 있다. 강함이 드러나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 땅에서 강해진다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 오직 소망을 그 나라에 둔다. 내 약함을 인정하고 ‘약해지기로 선택’할 때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난다. 승자의 기독교, 강자의 기독교는 세상에서의 성공이 하나님의 영광인 것처럼 포장하고 무명 소졸들의 헌신은 무시되었다. 우리 같은 이들의 헌신 동기를 순수한 열정에서 ‘나도 여기 있다’는 인정받음의 욕구로 변색시켜 버렸다.

그러나 약함의 기독교에는 하나님의 진정한 강함이 보이지 않게 작용한다. 우리 같은 이들이 무명의 소졸, 보통 군사들 중 하나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기억 못해도 주님은 그 이름 마음에 새기셨다. 오늘 본문에서 과부는 없는 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다. 주님은 그녀를 최고로 알아주시고 칭찬하신다. 나를 사랑해주시는 한 분의 인정이면 족하다. 많은 이들의 잊힐 인정은 나를 교만에 빠트릴 수 있다.

또한 과부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본다. 모든 것을 내어주심. 김병년 목사님은 외쳤다. “우리는 능력! 능력! 능력! 슈퍼맨이 되기 원하지만! 모든 능력을 가지신 그분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은 우리를 ‘헌신에의 소망’으로 초대하신다. 내가 없더라도 다 드린다면 주님은 기뻐하신다. 열 달란트든, 다섯 달란트든, 한 달란트든 말이다. 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과부는 죽어도 좋다고 전부를 넣었다! 스스로 과부보다 낫다고 여기지 말라. 과부에게 주시는 칭찬과 상급을 얻기에 합당한 헌신을 하라.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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