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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군대(2008.10.14.-2010.08.25.)

마가복음 15:42-47 |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남은 자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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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앞에 나선 아리마대 요셉

작성: 2008.10.18.(토) 새벽 (2008.10.17.(금) 제15보병사단 신병교육소 입소)
정리: 2024.03.06.(수)


마가복음 15:42-47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남은 자

열두 제자가 달아난 후 ‘남은 자’들의 모습이다. 특히 여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까지 보았다. 우리는 흔히 열두 제자만을 기억하지만, 이 하나님께서 고이 두 손으로 덮고 계셨던 작은 자들을 통하여 주님의 일을 계속하셨던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여자들은 십자가를 보고, 무덤을 보았으며, 부활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렸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몸을 무덤에 안치했다. 열두 제자는 도망갔지만, 이들은 예수님 곁에 있었고 특히 십자가를 목도했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39절) 백부장도 그러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옥에도 갇히고 죽기까지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고백하고 다른 제자들의 고백도 이끌었지만, 한 비자가 그더러 예수의 도당이라고 하자 주님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비자도 아닌 로마가 임명한 유대 총독 빌라도 앞에 당돌히(boldly, 43절) 나아간다. 이 ‘boldly’라는 단어는 ‘무례히’라는 말이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준 빌라도 앞에,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진 빌라도 앞에 무엄하게 나아간다. 게다가 그는 존경받는(prominent) 공회원이었다. 그는 공회으로부터의 위협과 조롱받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공회에서 예수님을 잡아 죽일 의논을 해왔음을 그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상관없었다.

빌라도는 의아했을 것이다. 예수를 죽이라 한 당의 사람이 와서 시신을 달라 하다니. 그리고 형이 언도되었다면 죄인일 텐데, 죄인의 시신을 달라 하다니(나의 죄를 감당하신 예수께 찬송을!). 또한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예수께서 벌써 죽으셨는가.

하나님의 때에 맞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 전날에 돌아가셨고 기록된 바에 따라 뼈가 상하지 않고(다리가 꺾이지 않고) 십자가에 달린 채로 돌아가셨다. 빌라도는 백부장을 불러 예수께서 죽으신 것을 확인하였다. 절대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호흡도 맥박도 정지한 지 오래였다(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이 깨닫기를).

본문맥으로 돌아와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이런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43절) 이 소개는 시므온과 안나 등 감추어진 인물들, 즉 ‘남은 자’들에게 붙여졌다. 이들은 원대로 하나님께서 들어쓰셔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죽으심과 부활에 참예한다(어찌 보면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큰 그림의 정중앙에 위치한 퍼즐 조각과 연결고리로 쓰임 받은 사람들이다. 이는 여인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백부장과 여자들처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자. 언젠가 시편 57편 7절의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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