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19.01.12.(토)
정리: 2022.12.21.(수)
마가복음 3:1-6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자연스러운 용기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바리새인들이 지켜보고 있다. 적대자들이 가득하다. 낫고 나서도 그들을 따르지 않았단 이유로 핍박할 것이다. 차라리 낫지 않으면 좋았을 걸, 예수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은혜 모르는 말도 안 되는 푸념도 할 것이다. 그래도 예수의 말을 따를 것인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예수와 그 제자들은 소수고 둘러싼 무리는 다수다. 다수는 나서 자란 대로 바리새인들의 권위와 관습에 기댈 가능성이 크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성경은 이 사람의 순종을 간단히 이야기한다.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고민하고 자시고가 없던 믿음이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주자 아담이 생각 없이 받아먹었던(아니면 생각이 짧았거나 유혹에 넘어갔던) 것처럼 무심코 손을 내밀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둘뿐이었고, 이 사람은 안식일에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고, 예수께서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손을 내미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
베드로에게 풍랑이 이는 파도를 볼 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걷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었다. 본문의 이 사람에게도 율법을 생각하고 시선을 의식하며 눈치를 보면 손을 내미는 일은 어려운 일이겠으나, 손을 내미는 행위 자체는 쉬운 일이었다. 손이 마비되었다 할지라도. 물 위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라도. 어떻게 보면 작은 행동이지만, 이 사소한 행동을 하기까지 숱한 고민거리가 몰려든다. 마비된 손을 내미는 게 가능해? 사람이 물 위를 걷는 게 말이 돼? 하지만 내 안과 밖의 소리에 귀를 끄고, 신뢰해야 할 오직 한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
정리해보자. 지금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자극들은 무엇인가? 내 믿음의 결단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수많은 메시지들 가운데 주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순종을 방해하는 소리들과 나의 성향, 믿음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옵소서. 내가 손을 내밀고 발을 내딛겠나이다. 작은 순종으로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뵙기 원합니다. 주는 주의 일을 이 수일 내에 이루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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