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19.01.17.(목)
정리: 2022.12.26.(월)
마가복음 3: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
하나님께서는 나를 자녀 삼아주셨는데, 나는 성자 예수님과 형제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라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가? 첫째, 아니다. 기본적인 윤리 규범에서 나는 어긋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말로는 한 걸음 한 걸음 어두운 길을 등불인 말씀을 의지해서 걷겠다고 하지만, 과연 내가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가? 그보다 순종할 의지가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 따르기라도 할 것 같은가? 지금의 내 상태를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다시 제자리다.
그래도 소망이 있는 건, 정체성의 기원과 재확인이다. 앞선 모든 이유에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건, 내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서라는 이유 이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거두어주셨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의지도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그의 은혜로 거두어진 것이고, 은혜에 감사하고 바른 길을 배워가기에 타락한 본성과 싸우다 지고 싸우다 이기는 것이다.
방금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울 사도는 악을 피하라고 했고, 많은 설교가들은 오물더미와 맞서면 더 더러워질 뿐이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해왔다. 나는 복싱이 생각났는데, 아무래도 가드하기보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게 낫다는 거다. 데미지를 덜 받기보다 안 받는 게 당연히 낫다. 게다가 상대가 망치로 두들길 때는 더더욱.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형제로 사는 길은 악에서 ‘떠나는’ 것을 포함한다. 악을 이겨보겠다고 얻어맞거나 더러운 걸 묻혀가며 뒤엉킬 필요가 없다. 악한 길에서 떠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길로 가야 한다. 그러면 알게 된다. 그동안 내가 탐했던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하나님의 얼굴이 얼마나 귀한지. 오늘 아침에도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그저께 묵상한 김용의 선교사님의 “예수면 다냐? 예수면 다다!”가 생각나 자리를 정리했다. 매일의 부활과도 같은 그리스도는 진정 나를 살게 하고,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다. 주의 성실이 크다. 오늘도 내게 새 힘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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