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19.01.18.(금)
정리: 2022.12.29.(목)
마가복음 4:21-2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등불이 되어
영적인 원리라고 해야 하나.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복은 진행할수록 더 커진다. 그러나 방치하면 그대로 있지 않고 점점 사그라들고, 사라져간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마찬가지다. 활용할수록 발전하고 커지는 게 하나님의 비전이고 은사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지금도 미루는 것은 아닐까? 글쓰기는 나에게 즐거움일까 부담일까? 확실한 건 부르심이 맞다는 것이다. 은사도 있다. 물론 이 묵상은 방향도 안 맞고 글을 엉성하게 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작품을 할 때 지혜를 물 붓듯이 주실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미뤄둘 건가? 계속 땅 속에 묻어두기만 하고 하나님이 결심을 안 주실까봐 오해하고 두려워하는 게 잘못이고 책망 받을 일이란 걸 알겠는가?
더 좋은 것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합리화일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하는 공부와 성우 연습은 다 작품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인내를 주시기를. ‘작품을 준비한다’는 게 강한 동기가 되기를. 하나님을 더 신뢰하기를. 나중에 ‘진작 따를 걸’, ‘진작 순종할 걸’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24절. 이 구절에서 아빠가 생각났다. 하루라도 남 욕을 하지 않으면 못 사는 사람. 그러면서 스스로를 완벽하게 여기는 사람. 그래서 지적을 못 견디는 사람. 늘 판단 기준이 자신인 사람. 그래서 이중 잣대, 아니 다중 잣대로 사람을 가르고 거르는 사람. 그리고 이렇게 나는 아빠를 헤아린다.
21절. 나는 집안의 등불인가. 내 발의 등불인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사람들을 주의 빛으로 인도하고 있는가. 글을 쓰면서 10년 전쯤 하나님께서 나를 모세의 지팡이처럼 쓰시겠다는 부르심이 기억난다. 이 기억을 적으며, 글로 그 역할을 수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당연히 하나님을 의지해서다. 나는 어리석고 지혜 없으니, 성경을 기록할 때 함께하신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셔야 한다.
하나님, 양들을 주의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팡이로 나를 쓰소서. 선하시며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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