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05.17.(금)
정리: 2024.05.17.(금)
마가복음 4:21-2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불 속에서 단련되는 금
부끄러운 일은 어둠 속에 감추고, 빛은 어둠 속에 감춘 것을 드러낸다. 주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요, 어둠을 몰아내는 빛을 뿜는 등불로 불러주셨지만, 나는 어둠에 속하여 자꾸만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부르심 받아 변화된 정체성이 있기에, 내가 무엇을 하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복음의 문을 닫았다. 나는 연자맷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빠져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 인간이다.
에스겔을 비롯한 예언서에서는 패역한 나라가 하나님의 징계로 국난을 겪거나 멸망할 때, 하나님께서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방종하며, 겉으로는 예배자인 척 살아가던 자신이 파괴되자, 그제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관념적으로 추정할 뿐이었는데, 이번에 내가 망하고 나서 몸으로 알게 되었다. 나를 가로막고 뒤덮은 가시떨기들이 불같은 어려움이 타버리자, 열린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삶으로의 회개가 일어난다.
요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오늘 금요 예배 본문인 욥기 42장에서의 욥의 고백과도 같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2-6) 나는 십수 년간 하나님을 말하고 성경을 이야기했으나, 내가 깨닫지도, 알지도, 헤아리지도 못한 걸 아는 것처럼 떠벌여왔을 뿐이었다. 이를 알게 되어 통렬히 회개한다. 이제 와닿는 하나님을 알게 되니, 내가 가르치지 않고 주께 묻사오니 주는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내 주권을 맡기고 평정과 담담함을 유지하려는데, 내 영혼은 아픈가 보다. 오늘 아침 일어나니 가족 중 한 분이 내게 왜 그렇게 서럽게 엉엉 울었냐고 물어봤다. 그것도 새벽 5시에. 너무 서럽게 울어서 내 방 창문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혹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꿈을 꾸었는지조차 모른다.
내가 운 건 전날 밤 11시쯤 온라인으로 독서 모임을 할 때였다. 『커뮤니티 성경 읽기 가이드』(김윤희 저, 지앤엠글로벌문화재단)에서 사사기 부분을 읽을 차례인데, 책 읽기 전 함께 들을 찬양으로 <주의 옷자락 만지며> 후렴과 <주님만이 왕이십니다>를 골랐다. 사사기의 주요 구절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기에, 하나님의 왕 되심을 고백하는 곡을 골랐던 것이다. 이 찬양을 듣고 따라 부르며 눈을 감고 기도했다.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종이 여기 있나이다.” 이렇게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다만 서럽게 운 건 아니고 조용히 울며 가끔 훌쩍거렸을 뿐이다.
그리고 이때에야 나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진정으로 고백했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께 자신의 종 됨을 고백하는 게 어떤 심경인지 이제야 알았다. 이전까지는 의지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며 왕이시고, 내가 주의 종이라고 선언하는 줄 알았는데, 가난한 마음으로 내 중심에서부터 드리는 고백은, 의지마저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권리 포기와 항복이다.
부복하여 엎드린 모습은 썩은 나무 토막이나 죽은 자 같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nothing)로서 바닥에 엎어져 놓여 있다. 열심도 의지도 아닌,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마른 막대기였다. 나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현현하실 때마다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엎드리는 게 주의 거룩과 영광에 압도되어 그러는 건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하나님의 주권과 왕권에 나의 권리와 목숨과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되기에 그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주님, 나를 잡아 일으키사 주의 지팡이로 삼으소서.
새벽에 내가 울었는지, 왜 울었는지 그렇지 않고 문이 잠긴 방 안에서 다른 누가 울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주께서 우신 것일 수도 있다. 마침 얼마 전 읽은 『열방을 품은 그리스도인』(밥 쇼그렌 저, 좋은씨앗)에서 놀라운 실화를 접했었다. 1993년 북인도에서 급진적인 이슬람 마을에 살던 유일한 그리스도인이 죽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묘지에 묻혔다. 그날 밤 어느 낯선 사람이 울면서 언덕 묘지에서 내려와 마을에 들어오는 모습을 마을 사람 모두가 보았다. 다음날 CCC <예수> 영화 팀이 마을에 들어와 영사기를 설치하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영화를 상영했다. 처음으로 예수 역을 맡은 영국 배우의 얼굴이 드러나자, 마을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은 전날 무덤에서 내려왔던 그 사람이라며 놀랐다. 그리고 마을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렸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읽었고, 가족은 본 적이 없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걸까? 지금의 내가, 혹 앞으로 내가 겪을 어려움 때문에 나를 불쌍히 여기신 걸까? 알 수 없다. 그런 기적은 책에서만 읽었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아졌다.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고 했다. 빚처럼 –3,000만원이 놓일지라도,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실 것이다. 최악의 죄인에게마저 당신을 알리시는 최선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한다.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알아가니, 다른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깊고 높음을 알아가니, 그분의 존귀함을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주께서 나를 태우시는 지금, 불붙은 나를 등경 위에 두사 주의 빛을 비추실지라도. 나는 보이지 않고 주의 빛만 드러나 보이기를. 내 수치와 죄악은 기억됨이 없이 사라지고, 주의 의로운 빛이 사람들의 눈을 밝히기를. 엘리야가 기도할 때 내린 불이 한 것처럼, 주는 주께서 하나님이심을 알리시고, 내가 주의 종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내 꿈이 사라졌으니, 주의 꿈을 주소서. 내 뜻이 사라졌으니, 주의 뜻을 주소서. 내 계획이 사라졌으니, 주의 계획을 주소서. 내가 죽었으니, 주의 생명을 주소서.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니, 주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것이 가장 선하고, 그것만이 나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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