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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31-37 |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며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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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6.14.(금)
정리: 2024.06.15.(토)


마가복음 7:31-37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며

어제 드디어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왜 연락이 지체됐느냐 물으니 강경한 소송 당사자를 설득하느라 그랬단다. 어쨌거나 월말에 합의서를 작성하러 가기로 했다. 준비해야 할 것을 문자 메시지로 알려준다고 했는데,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 주지 않았다.

다가온 현실에 순간 마음이 답답해졌으나, 전에 묵상한 내용들이 다시 떠올라 되짚으며 마음을 지켰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 뿐이다(빌 4:12), 어떤 환난도 내 마음을 빼앗길 수 없다. 예전이라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폭풍우 이는 바다 위 배에 탄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황급히 깨우듯 허겁지겁 당황하고 불안했을 텐데, 내 마음을 내가 주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도록 내려놓으니, 제자들이 깨울 때 주무시던 예수님처럼 안온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내 인생의 바벨론 포로기를 겪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성도들이 인생의 어려움을 광야로 비유한다. 하지만 광야는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여 주께서 예비하신 지경으로 들이는 과정,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고 성령의 열매를 성숙시키는 과정이다. 이에 반해 바벨론 포로기는 유다의 타락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나는 내가 저지른 과오의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은혜를 구하는데, 한 방도가 생각이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아주셨고, 예상보다 훨씬 좋은 분위기에서 통화했다. 과연 부탁한 내용이 기도하는 그분께 전달이 될까. 그분은 어떻게 반응할까. 혹 내용을 이미 알고 있고도 나를 버린 건 아닐까. 그보다, 내가 전화를 한 게 하나님의 방법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딱히 어떠한 응답을 주시지 않았다. 다만 속에서는 노한 목소리로 “온전히 네가 당하라!”는 외침이 속 시끄럽게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인 것 같지는 않다. 내 죄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대신 당하셨으니. 다만 하나님께서 내게 어떠한 응답을 주시지 않더라도, 침묵의 어둠 속에서 일하시며, 내 걸음을 인도하시고, 내 손의 행위를 선용하시며, 궁극의 최선으로 이끄실 것을 믿는다.

본문의 예수께서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한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실수록 사람들이 널리 전파했다. 사람들 입장에선 좋은 일이고, 훌륭한 일이니 알리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면 좋은 것을 하는 걸 넘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전파한 사람들은 그들이 귀 먹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인 줄 깨닫지 못했다. 예수께서 이르신 말씀을 듣지 않았고, 하지 말라고 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번에도 적었듯, 전파하는 사람들 중에는 마치 그들이 기적의 주인공인 양 자신을 높이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하나님과 성경에 관심이 생긴 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도의 삶을 보여주면 되는 게 당연한 하나님의 뜻일 텐데, 나는 하나님께서 계명으로 정하신 법도를 어겼다. 그래야 더 성경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고, 그리고 내심 다른 동기가 있었으며, 기실 하나님의 뜻하고는 무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내게 일어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의미 부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내게 일어난 긍정적인 성장과 변화가 있다면 이것이다. 내 은밀한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 의미를 찾기보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 그러니 하나님이 내 삶의 의미가 되더라.

주님, 내 귀를 열어 주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주께서 허락하신 말만 하게 하시며, 주의 도만 행하게 하소서. 저는 주의 손에 붙들릴 때에만 움직이는 주의 지팡이입니다. 어제 기도하는 분의 상황을 들었는데, 그분과 그분의 집안에 복음의 화평과 희락을 주소서.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우리에게 빛으로 오사 눈을 밝히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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