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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07-2008.10.13.

마가복음 9:14-29 | 능력의 근원을 포기하는 것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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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아이를 예수께 데려와 도움을 구하는 아버지, 현대화

작성: 2008.08.14.(목)
정리: 2023.12.24.(일)


마가복음 9:14-29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능력의 근원을 포기하는 것

내가 그동안 믿음 없는, 아니 믿음 가짐을 포기하는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욥의 친구들 같은 변론만을 해왔다. 하나님께 나아가 고하는 시간보다 내 말을 많이 했다. 여러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며 지식을 쌓거나, 과거 하나님을 만나온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로 가르쳐왔다. 그러나 성장하거나, 변화하거나, 남을 성장시키거나 변화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리와 세관들의 마음을 더 닫히게 했다.

아웅다웅하는 데에 정말 필요한 분은 예수님뿐이었다.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분의 오심, 다가오심이 필요했다. 나는, 우리는 주님의 오심에,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셨을 때의 욥처럼(욥 42:5) 매우 놀라 압도당하여 달려와 문안할 수밖에(they were overwhelmed with wonder, and ran to greet him, v. 15, NIV) 없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놀라움으로의 압도당함이며 놀라움의 연속이다.

내 입술에서 천 마디 말이든 만 마디 말이든 이야기를 떠나보내고, “친구여”라 부르시는 그분과의 문안 한 번이 더 귀하니, 내게 오소서. 달려가 문안하겠나이다. 허나 그럴 수 없을 만큼 내 영이 다쳐 누워있다 해도, 주는 내가 왕께 문안하러 오지 않음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절뚝발일지라도, 그래서 늦게 나아간다 해도 왜 늦게 왔냐고 책잡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누운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다시 눕히시고, 일으키는 건 그분의 몫으로 취하십니다.


주님은 문제의 요점을 물으시고, 무리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다. 그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보다는 긍휼과 사랑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전이 되고 백성이 되어 그분의 통치를 받아야 할 아이를 괴롭힌 귀신을 향한 거룩한 분노로 아이를 데려오라 하신다. 아이는 스스로 나아올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이를 데려온다.

아이는 심각한 상태였다. 어쩌면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던 시대였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이고(그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 마음은 예수님을 감동시켰다.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스스로 변론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그래왔지만 소용없음을 깨달은 후일지도 모른다. 어찌하였건 그는 예수님의 믿음에 관한 유려한 선포에 즉시(immediately, v. 24, NIV) 반응한다. NIV를 보면 “I do believe”(v. 15)라고 하는데, 일반동사(believe) 앞 do는 강조 표현이다. 내가 정말 믿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직하게 예수님께 도움을 구한다. 나의 불신을 극복하게(또는 압도하게, overcome, v. 24, NIV) 도와달라고. 제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 했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믿음을 구했다.

이미 제자들은 이전에 숱하게 전도하며 귀신을 쫓아내 왔다. 그들은 경험과 지혜로 뭐가 해보려 한 것 같다. 그러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끄러웠는지 집에 들어가(indoors, privately, v. 28, NIV) 조용히(privately, v. 28, NIV) 묻자, 예수께서는 기도 외에는 안 된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는가? 그때의 모습은 그랬던 것 같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일을 하려면 예수님을 따라야 했다. 예수님은 매일 새벽 미명에 산에 올라 기도하셨다. 그 기도로, 그 성령 충만으로 하루를 살아가셨다. 아버지와의 교제로 인한 능력의 근원 되심과 믿음. 그러니 제자들에게도 기도가 필수였다. 공부하고, 변증하고, 변론하기에 힘쓰기 이전에 우리는, 나는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묵상 나눔

‧ 장환이 형: ‘믿음’이란 단어 자주 등장. 99% 믿음 + 1% 불신 = 0% 믿음 + 99% 불신. 안 믿는 사람이 볼 때 미련한 짓인 기도. 신뢰하지 못하면 순종하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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