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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군대(2008.10.14.-2010.08.25.)

사도행전 12:1-10 |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5.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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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와 베드로

작성: 2009.03.30.(월)
정리: 2025.09.22.(월)


사도행전 12:1-10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

야고보 사도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적다고 할 수 있다. 복음서에서도, 사도행전에서도 그는 특별하게 부각된 적이 없다. 복음서에서는 형제 요한과 세트(?)로 나오곤 했으며, 빌립이나 도마보다도 비중이 적었다. 사도행전 초반에 베드로와 요한은 빛났지만, 야고보의 이름은 12장에 이르러서야 재등장한다. 그것도 대사 한마디 없이 순교했다는 한 줄이 끝이다. 붙잡히는 과정, 재판 과정, 변론 한마디 기록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후로는 동명이인인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부각된다. 어떻게 보면 서러울 일이다.

그러나, 야고보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고, 우리도 마땅히 2절의 한 줄(“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을 깊이 받아들이고 대조적인 3절(“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을 이어받으며 가슴 아파하고 기도하며 회개해야 한다.

그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았다. 복음서에 늘 쌍으로 나오던 형제 요한에게 사도직 수행 초기에 닥친 야고보의 죽음은 그에게 두고두고 애통하는 심령을 허락했을 것이다. 사도들 중에 가장 먼저 죽은 야고보와 달리, 요한은 가장 오래 살았으며, 다른 사도들이 박해와 순교로 죽은 것과는 달리 100세 가까이 살다 ‘늙어 죽었다.’ 그 기간 동안 야고보를 잃은 슬픔과 못다 한 정을 가지고 늘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쳐온 것이다.

한편 베드로의 체포는 그에게 믿음의 시험대가 되었다. 주께서 잡히시던 날처럼 도망치고 부인하고 두려워할 텐가, 아니면 갈릴리 바닷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 세 번의 고백을 지킬 텐가. 이제 야고보가 잡혀 죽고 자신도 잡혀 칼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수꾼들은 두 눈 부릅뜨고 서서 옥을 지키는데, 베드로는 평안히 누워 자고 있다. 그에게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전혀 없었다. 군인들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였어도 평안했다. 그는 풍랑 가운데서도 배에서 주무시던 예수께서 사망을 이기셨음을 알았다. 야고보의 죽음은 비극의 결말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에 대하여) 무명한 자 같으나 (하나님께 대하여) 유명한 자’(고후 6:9)였다. 야고보는 순교의 영광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을 받고 베드로를 응원하고 있다! 동료의 죽음에도 ‘다음은 나구나’를 단념조가 아닌 환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베드로에겐 있었던 것이다.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 요 6:20)고 하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와 함께하시기에.

 

그는 남은 사명이 있기에, 새벽이슬로 사라진 야고보를 이어 그로 적셔진 땅을 경작하기 위해 주의 사자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그의 의지는 0%인 순종.

그때 파수꾼들이 있어도 상관없이 그대로 지나쳤다. 기도(5절)는 이루어졌다. 베드로는 죽음에서 자신을 건지신 예수의 은혜를 이 일을 표징 삼아 다시 경험하였고, 자신이 주를 위하여 수고한다 하나 결국은 주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정하신 때까지 보호하시며 앞서시고, 자신이 자는 동안에도 일하고 계심을 다시금 깨달았다.

옥중의 베드로와 분대를 옮기기 전의 나. 베드로는 하늘에는 영광을 바라고 땅에서는 평안을 누렸지만, 나에게는 불안만이 가득했다. 내가 순종했다면, 내가 항상 기뻐하라는 나를 향하신 주의 뜻(살전 5:16-18)을 지켰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지켰다면 어땠을까. 후회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이제는…… 다만 이 시간 내게 계속 되뇌도록 이끄는 구절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고후 6:9)다. 어제 중대 군종을 하라는 목사님의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군종 타이틀 없이 다른 군종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남아있고 싶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 맡겨드리자. 또 다시 내가 먼저 움직였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벌이지 말고. 모세가 광야로 쫓겨났듯이, 요셉이 형제들의 손에 팔리게 됐듯이.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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