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19.07.26.(금)
정리: 2020.10.18.(일)
사도행전 13:1-12
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나바와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나엔과 사울이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한 뒤에, 두 사람에게 안수를 하여 떠나보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므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그들은 살라미에 이르러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은 요한도 또한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 그들은 온 섬을 가로질러 바보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들은 어떤 마술사를 만났는데, 그는 거짓 예언자였으며 바예수라고 하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총독 서기오 바울을 늘 곁에서 모시는 사람이었다. 이 총독은 총명한 사람이어서, 바나바와 사울을 청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름을 엘루마라고 번역해서 부르기도 하는 그 마술사가 그들을 방해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술사를 노려보고 말하였다.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곧 안개와 어둠이 그를 내리덮어서,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총독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새번역)
나의 묵상: 바울과 엘루마
바울이라는 이름이 첫 등장한 장면에서 바예수라 하는 엘루마가 맹인이 된다. 그것도 ‘얼마 동안(for a time).’ 사울이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이전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엘루마가 얼마 동안 시력을 잃은 것은 사울이 바울이 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동일하다. 그도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얼마 동안 앞을 볼 수 없었고, 바나바가 그의 인도자가 되었다. 바울은 어떤 마음으로 엘루마에게 이 같은 저주를 한 것일까? 이전에 예수님을 박해하는 대적자였던 자신이 떠올라 그런 것일까.
이후 엘루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남을 부리던 자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의 심리는 어땠을까? 그는 가난해진 마음으로 바울처럼 회개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단순히 원수가 징벌을 받는 이야기로 끝나선 안 된다. 바울은 되고 엘루마는 안 되는가? 누가는 왜 바울의 눈 멀고 회심한 사건을 기록하고 얼마 뒤 엘루마가 눈 먼 이야기를 기록했을까? 그에게도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까지 소망의 가능성을 짚으며 적어 보니, 내 기준으로는 정말 이 사람은 안 될 것이라고 여긴 원수들이 떠오른다. 이들은 정말 안 될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바울로 바꾸셨다. 어쩌면 엘루마도 바꿨을지도 모른다. 그도 나중에는 ‘눈을 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원수들에게도 그리 하실 수 있다. 눈을 멀게 해서라도. 그래서 원수 사이에 화평이라는 기적도 이루실 것이다. 이 하나님을 기대하고, 믿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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