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 2009.05.07.(목)
정리: 2026.07.15.(수)
사도행전 13:1-12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개역개정)
나의 묵상: 소경 되었던 자가 소경을 인도하기
이번 사도행전 13장에서부터 사울이 바울로 불린다. 총독 서기오 바울의 이름을 딴 듯 보인다. 어쨌거나 13장 서두에 바울은 여러 쟁쟁한 인물들과 함께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녹명된 자에 포함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울로 불렸던 그는 복음의 훼방자요 핍박자였다. 그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 ‘박멸’하고자 할 때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되었다.
그가 변화된 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택함을 받은 사도로 세움을 받기까지는 잠잠할 시간이 있었다. ‘첫 만남’ 때 사울은 눈이 멀었다. 맹인이 된 것이다. 앞을 볼 수도 없고 식음을 전폐하기를 3일, 그는 성령의 인도로 아나니아로부터 개안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3년간 바뀐 가치관을 그 방향대로 정립하고, 성령님과 교통하며 영성을 쌓고, 구약에서 그리스도 언약과 마지막 때의 언약을 찾고, 인품을 다듬어갔다. 때가 이르매 그를 훈련시킨 성령께서는 그를 들어 쓰셨다. 그는 안수를 받고 함께 세움을 받은 동역자와 함께 첫 사역을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훼방자가 나타났다. 그는 거짓 선지자요 멸망의 자식으로, 이름도 바예수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거짓 선지자’를 대표하는 듯하다. 그는 마술로 현혹하여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또한 내부에서 나온 적(바예수는 유대인 출신)이고,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처럼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해석을 변개하여 사람들을 속인다. ‘율법과 선지자’의 권위를 그가 가지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그를 이겼다. 바울은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이기는 자’였다. 방해는 처단되고 복음은 더욱 전파되고 있다.
여기서, 마술사는 맹인이 되어 얼마간 해를 보지 못한다. 이로써 두 가지 해석이 떠오른다. 하나는 오늘 본문을 처음 대할 때의 것이다. 바울처럼, 엘루마도 얼마간 맹인이 되었다가, 새로이 눈을 뜨며 복음의 훼방자에서 증거자가 되는 것이다. 바울에게 들었던 악담(?)을 베드로도 예수님께 비슷하게 들었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막 8:33)고. 엘루마는 말세의 ‘거짓 선지자’의 모형일 뿐, 그도 역시 한 인간이기에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 자신이 그러했기에 가장 잘 알지 않았을까.
두 번째 해석은 묵상을 기록하면서 나왔다. 엘루마가 결국은 망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10절에서 바울이 엘루마의 정체를 드러내는 말은 예수님 공생애 시절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이 들었던 말과 유사하다(“독사의 자식들아!” - 마 3:7, 마 12:34, 마 23:33, 눅 3:7). 엘루마도 멸망 가운데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둘 중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하다가 11절 말미의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seeking someone to lead him by the hand – TNIV)” 이 구절을 보며 긍휼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사도행전 9장 8절에는 사울이 회심할 때 눈이 멀어 사람의 손에 이끌림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So they led him by the hand into Damascus. - TNIV)” 바울도 동일한 경험을 했기에, 그가 엘루마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을까. 베드로에게 사단이라 책망하신 예수께서 다시 그를 이끌어주시고 사랑을 확인하신 것처럼. 그렇게 바울처럼 엘루마도 바예수라는 이름을 ‘예수의 증인’이라고 고치고 바울을, 그리고 바울의 주님을 따르지 않았을까.
또한 바울이 바예수에게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for a time)” 해를 보지 못할 거라고 한 말에도 주목해 본다. 바울도 평생 맹인으로 있지 않고 얼마 동안 해를 못 보다가 결국 눈을 떴다. 예수님은 장사한 지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우리도 자는 자들 가운데서 얼마 동안 기다리다가 부활할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바예수도 얼마 동안 맹인이 되었다가 새로운 시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기도 하고, 또 다른 짐승은 예수를 흉내 내어 사람들을 미혹한다. 하지만 짐승들이 세상을 휘저을 기간은 영원하지 않고 ‘얼마 동안’에 한정되어 있다. 어둠의 기간은 끝없어 보이나 끝이 있고, 주께서 주실 광명이 우리를 기다린다. 내가 어둠에 속하여 빛을 탄압해왔어도.
……훼방자를 사랑하사 변화시키신 사랑, 그 은혜. 그 은혜가 나에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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