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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군대(2008.10.14.-2010.08.25.)

사도행전 15:1-11 | 활보하는 성전의 자유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6.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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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9.05.15.(금) 새벽
정리: 2026.08.02.(일)


사도행전 15:1-1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활보하는 성전의 자유

이러한 과도기는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고, 그때나 지금이나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다. ‘껍질을 벗고 알맹이’를 찾는 과정. 이제까지 입어온 껍질을 지키려는 입장은, 그것이 이제까지 유효하고 마땅하다 여기며, 잃어버리면 자신까지 잃을 것 같은 불안감을 갖고서, 없으면 큰일 날 줄로 알고 있다. 반면 알맹이를 찾으려는 입장은, 본질과 마음을 지켜 그리스도의 선한 양심을 따라 행하는 것 이외의 ‘허례허식’이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이 자리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자유하라고 외치며, 명예롭고 의롭고 당연하게 보이는, 그래서 우리의 자유로운 발걸음을 멈칫하게 하는 모든 속박을 안티테제와 타도의 대상으로 볼 것을 강권하며, 이 안티테제를 저주까지 하였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안티테제로 배척해야 할 내용 역시 오늘 본문과 마찬가지로 할례의 문제였다. 본문의 일을 겪는 바울은 모두에게, 즉 안티테제 진영의 주장에 설득될까 말까 하여 머뭇거리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쭈뼛쭈뼛하며 부자유한 우리에게 성경의 근거를 들어 말한다.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의 할례를 받았으니 육체의 할례를 굳이 받을 필요가 없다고. 너희 영혼들아 자유로울지어다! 바울은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유진 피터슨, 『자유』, IVP


그는 또한 주 예수 안에서 자유하라고 외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우리의 상식으로 얼핏 들으면 역설적인 표현이다. 자유로우려면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 안은 누군가를 가두는 이미지다. 반면에 밖은 거칠 것이 없도록 한다. 그러나 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세상과 세상의 것에 갇히지 않는다. 유혹과 위협과 허례허식에서 자유롭다. 진정한 자유자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이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칼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천사들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가난과 결박에도 자유롭다. 그를 지키는 간수보다 쇠사슬에 매인 바울이 자유로웠다.

반면에 간수는 여러 고민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의 가능성과 집안 사정에 갇혀 있었다. 바울의 주 예수께서는, 허울과 율법의 상징으로 우상화되고 섬김과 경배의 대상이 된 성전의 휘장을 찢고 영문 밖으로 나오셨다. 그분의 몸으로 휘장을 찢으신 것은 단순히 우리가 지성소로 자유롭게 출입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쳐놓은 고정관념을 깨뜨리시고 우리에게로 다가와 당신의 자유를 보이신 사건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있는 영문 밖으로 나오셨고, 아직도 외형의 성전에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있는 영문 밖으로 나오라. 내가 성전이니라. 나의 안에 거하라. 네가 자유하리라.” 다윗이 주의 집으로만 만족할 수 있던 것은 그가 시련의 삶에서도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잡히시기 전까지 누구도 붙잡을 수 없었던 예수께서는 그분의 자유로 붙잡히셨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지만, 그분의 부자유가 우리를 자유케 했다. 그리고 성전이신 그분은 사흘 만에 새롭게 나타나셨다(성전이신 예수에 관하여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있지만, 여기서는 묻어두기로 한다). 활보하는 성전인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진리이신 그분은 말씀하신다.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우리가 율법 안에 갇혀 폐쇄적으로 구별된 모습을 거룩하다 한다면, 영문 밖에서 세상에 갇힌 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가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려면, 노아의 방주가 물살에 맡긴 바 되었듯이 우리가 활보하는 성전 안에서 공의와 사랑의 물결에 맡긴 바 되어야 한다. 임의로 부는 바람처럼 성령께서 그분의 의지대로 자유로이 이끌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아바와 성령과 예수께서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바가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너희를 속박하는 비진리의 혼합을 경계하고 대적하라. 진리의 군사가 되어라.” 물론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전 2:16) 당신의 자유를 육체 안에, 그리고 십자가에 붙박으신 예수님처럼, 그랬어도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예수님처럼, 자유롭게 아버지의 원대로 순종하고 순종하여 참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사역 후원 및 자율 헌금: 하나은행 748-910034-8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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