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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17-27 | 하나님의 것을 탐낸 사울 vs. 사랑의 원칙주의자 다윗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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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4.06.(토)
정리: 2024.04.06.(토)


사무엘하 1:17-2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의 것을 탐낸 사울 vs. 사랑의 원칙주의자 다윗

요나단은 다윗과 생명 같은 친우의 관계라 할지라도, 다윗이 사울을 대하는 마음은 소인의 생각에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사울이 어떤 인물이었는가.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임명한 왕이었다. 그는 키가 남들보다 어깨 위는 더할 정도로 컸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군계일학처럼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신체적으로도 뛰어났고 사무엘의 가르침에 지혜가 빛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서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 다윗의 추도시에 따르면 사울은 이스라엘 여인들을 붉은 옷과 금 노리개로 화려하게 꾸미고 입혔다. 옷 한 벌로 수십 년을 버티던 광야 시기나 늘 약탈의 위협에 시달리던 사사 시대에는 꿈도 못 꾸던 부귀였다.

그러나 사울은 점차 이방의 왕들을 따라 넘보지 말아야 할 권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는지라 왕은 하나님의 법도를 준수하고, 제사장은 예배를 집전하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사울은 사태가 급하다며 예배를 집전했다. 왕의 제사장의 역할을 침범한 것이다. 왕이 제사장을 겸하는 제정일치 제도를 따르는 다른 민족이었다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왕이 제사를 집전하는 건 하나님께서 그어놓은 선을 넘는 것과 같았다. 태초의 인류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반역과 마찬가지였다. 오늘날로 치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입법부인 국회와 사법부마저 장악하거나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강제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사람들을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하고 법관으로 임명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탁월함을 의지하며 선을 넘도록 부풀리던 사울의 인생은, 자신보다 뛰어난 골리앗이란 인걸을 마주치자 한계의 난관에 부딪혔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위대함을 믿는 사람이 겪는 필연이었다. 그런데 이 위기를 작고 연약해 보이는 소년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해결해준다. 보통이라면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국가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준 은인에게 고마워해야 할 텐데, 이스라엘의 민심이 다윗을 주목하자 사울은 불안해한다. 이제껏 사람들이 자신의 우월함을 칭송하며 그 때문에 자신을 왕으로 믿고 따랐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다윗을 더 위대하게 여긴다면 다음 왕은 아들 요나단이 아니라 다윗이 될 거란 두려움에 빠졌다. 사울도 과거 기드온처럼 자신의 왕조를 대대로 세우며 물려주길 원했던 것이다. 입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말해도 실제로는 가문의 유익을 하나님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막대한 자금과 권력이 된 당회장 자리를 물려준 모 초대형 교회가 사울을 답습한 것일 게다.

이후로도 사울은 편집증에 시달려 틈만 나면 다윗을 제거하려고 했다. 자신의 광증을 음악 치료로 안정시키던 다윗(삼상 16:23)에게 창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다윗이 피하기 전까지 있던 자리의 벽에 창이 박힐 정도로 강하게(삼상 19:9-10). 자신을 도와주고 고쳐주며 심지어 살려주는 다윗을 사울은 극도로 증오했다. 아니 두려워했다(삼상 18:29).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여기고, 이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며 하나님께서 차기 왕으로 기름 부은 다윗을 죽이려 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것을 받았으면 감사하며 주신 분의 뜻에 맞게 선용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할 텐데, 사울은 청지기가 아니라 소유주가 되고 싶었고 그 때문에 주신 분의 뜻마저 거부하고 반역했다. 왕의 자리라도 하나님을 잃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차라리 왕의 지위를 던져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찾는 게 더 귀한 가치라는 걸 그는 잊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왕위 따위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나님이 전부인 것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사울과 달리 다윗은 하나님께마저 대드는 사울이 자신을 숱하게 죽이려 했는데도 그를 섬겼다. 그를 치료하려 했고, 죽일 절호의 기회에도 옷자락만 베고 그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껴 괴로워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그게 옳기 때문이다. 사울은 왕의 지위에 취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방자히 행해왔다. 권한 밖의 것을 침해하여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려 했고,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 하셨지만, 사울은 경제 논리로 가축을 남겨 절반의 순종 곧 불순종을 행했다(삼상 15:1-19).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자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에 어떠한 상황에도 마음을 지켜 사울을 치지 않았다. 그것이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거나 ‘쓰레기는 길바닥이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처럼 당연하니까. 마땅하니까. 옳으니까. 맞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켰고 자기 소견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해석을 휘거나 가감하지 않았다.

둘째는 기름 부음 받은 뒤로 성령에 충만한 다윗이 왕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다윗의 눈에 불안에 떨며 창을 던지는 사울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고통받고 아픈,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나약한 한 인간이었다. 다윗은 성심을 다해 사울을 돕고 싶었고 그의 회복을 간절히 바랐다. 한때 구국 영웅이자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왕이 망가진 채 괴로워하는 모습에 다윗은 긍휼과 연민을 느꼈다. 다시 왕이 건강히 일어나기를 원했다.

사울은 자신을 해할 의도가 없던 다윗을 평생 의심하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여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자신을 해치려는 사울을 끝까지 사랑하고 살리려 했다. 다윗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사울의 죽음에 후련해하며 잘 죽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는커녕 크게 비탄에 빠져 그를 애도하고 추모했다.

내가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여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사랑하고 지키며, 나를 해하려는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사울처럼, 아니 사울보다 더 자기 소견에 옳고 자기 욕망에 좋은 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내 욕심을 채우고 있다. 주께서 성령으로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겔 36:26),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딤후 2:15)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니, 베다니 마리아와 바울처럼 내 남은 삶은 허튼 데 쏟지 않고 남김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전제로 붓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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