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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사무엘하 5:1-5 | 간사한 믿음에 긍휼을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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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이스라엘의 인정을 받는 다윗 왕

작성: 2024.04.27.(토)
정리: 2024.04.28.(일)


사무엘하 5:1-5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간사한 믿음에 긍휼을

이스보셋마저 죽자 온 이스라엘의 권력이 다윗에게로 모였다. 다윗은 자신이 손을 대지도 않았지만 사울, 아브넬, 이스보셋 등이 사라져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등극한다. 스스로 원수 갚음을 하지 않고 이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채, 도리어 자신은 자신을 죽이고 이기려는 자들을 선대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들과 정정당당히 승부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자신과 무관한 사건으로 죽거나, 내분이 일어나거나, 항복해왔다.

원수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신경을 끊는 건 그나마 쉬우나, 그들을 선대하고 그들의 비열함에 정당하게 대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이게 거울한 십자가를 지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이라면, 하나님의 방도라면, 나는 따라야 한다.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볼 것이다. 다윗뿐만 아니라 구름과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자.

한편 아브넬에 이어 이스보셋이 죽자 나아온 이스라엘 지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동안은 사울의 잔당에 속해 있었으니 이해해야 할까? 사울 잔당에 속하지 않던 지파들은? 다윗과 이스보셋 중 어느 편에 설까 기회를 보다가, 대세가 한 편으로 기울었으니 움직인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해야 할까?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라는 기름을 부으셨는데, 눈치 보다가 판세가 나왔으니 이제야 인정한다고? 그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운운하면서? 약속을 알고 있었다면 진작 다윗의 편에 섰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스라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하나님의 약속, 명령, 성경 구절 등을 알아도, 쉽사리 믿지 못하는 나를 본다. 무언가 성취의 조짐이 보일 때까지,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확신하지 못하는 나를. 기드온처럼 양털 같은 걸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싶기도 하고, 비가 올 거라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을 구름이 다가올 때까지 믿지 못하던 아합의 신하 중 한 사람 같기도 하다. 정작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약속의 성취인 예수님이 눈앞에 나타나도 완악하게 믿지 않고 칼을 들던 모세 당시의 파라오나, 이세벨이나, 바리새인 같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 얄미운 이스라엘을 징계하거나 핀잔하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약한 믿음의 나를 꾸짖지 않고 받아주신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 9:24)

그래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역동적인 삶, 성취를 맛보는 인생을 걸어가길 소망한다. 언제까지 넘어지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또 넘어지길 반복해야 하나. 이제는 좀 뛰어보고 싶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9) 아멘. 나아가 얄미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 하나님의 형상으로 알고 받아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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