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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2:1-12 |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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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5.21.(화)
정리: 2024.05.21.(화)


시편 62:1-12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개역개정)

 

나의 묵상: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지난 금요일 묵상에서 욥기 42장 초반에 나오는 욥의 고백과 회개가 무슨 뜻인지 절절히 알아 나도 같은 기도를 했었다. 그런데 금요일로부터 이틀 뒤, 오늘로부터는 이틀 전인 청년부 예배에서 동진이가 대표 기도에서 딱 그 욥기 42장의 그 구절들로 기도를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대표 기도를 들으며 눈물이 흐른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이렇게 나를 내려놓고 내 빈 자리에 하나님으로 충만한 나날들이 이어지다가도, 오늘 아침부터 내 이전 모습이 문득문득 나오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약함을 담담히 인정하며, 하나님과 충만한 ‘상태’를 우상시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

본문의 시인은 자신의 영혼에게 하나님만 바라라고 말한다. 물론 (셀라)를 사이에 두고 첫 문단(가사 1절)의 1절은 이미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라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셀라) 뒤 두 번째 문단(가사 2절)의 첫 구절(6절)은 왜 영혼에게 하나님만 바라라고 할까. 분명 나는 하나님만 바라고 있는데도, 유혹과 환난에 마음을 노략질당할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길 흘기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표현한 듯싶다.

시인은 한편으론 하나님‘만’ 바라라고 한다. 다른 여러 도움, 권세, 재물, 장비, 지식, 인맥 등이 내 힘의 반석과 구원과 요새와 피난처가 될 수 없었다. 인자와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아하스는 포악한 앗수르 제국을 의지했고, 솔로몬은 늘어나는 재물이 마음을 두었으며, 다윗은 탈취한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겼었다. 나 역시 부당한 탐심을 바라다가 솔로몬처럼 겉으로는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나 실상은 욕심의 우상을 들여와 혼미했고, 그러다 다윗처럼 큰 꾸지람에 정신을 퍼뜩 차렸으며,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당했듯이 나도 살아갈 재화를 빼앗기게 생겼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이제라도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니, 은혜롭게도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치 않고 임재하시고 인도하신다. 시시로 주를 의지하오니, 주의 인자에 감격하고 주의 권능에 감사하는 날이 속히 오게 하소서. 내 마음을 주님께 토해냅니다.

시인은 또한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라고 한다. 때론 하나님께 부르짖기도 하고, 크게 소리 내 울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나는 평강 가운데서 잠잠히 있다. 주께서 가까이 계시니, 크게 부르짖지 않아도 주께서 내 상황과 마음을 아신다는 신뢰가 나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들, 해주실 무언가, 해결해주실 어떤 일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니 자연히 잠잠해진다. 적어도 요즘의 내 경우엔 그렇다.

시인이 하나님을 표현한 말 중엔 ‘피난처’가 있다. 나는 큰일을 저지르고 커다란 대가를 치를 위기에 처했는데, 어떻게 대처할지 신경을 기울이고, 사람을 알아보고, 방안과 계획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께로 피할 뿐이다. 살인자라 할지라도 도피성에서는 안전한 것처럼. 어쩌겠는가? 내가 아무리 바둑 고수처럼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대로 된 적이 없을뿐더러,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어 생각만 하면 답답해 호흡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도망갈 수밖에. 내 능력이 안 되니. 그러나 인자와 권능이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행한 대로 갚으시면 큰일이다. 구하는 것은 회개하는 지금 회개를 행한 대로 내게 선대하시기를.

또한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맡긴다. 그 사람의 구원과 영광도 하나님께 있으니, 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소망한다. 주의 인자와 권능을 경험하기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은혜로 대면하기를. 하나님 아시죠?

그리고 독서 모임을 함께하는 사람들 중 한 분이 암 진단을 받았다. 진단받은 날부터 며칠 동안 모임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분도 마음은 담담하다고 한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하나님 아시죠? 주의 자녀에게 인자와 권능을 베푸소서. 지금 당장, 속히. 그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섬겨왔는지 주께서 아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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