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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에스겔 37:1-14 | 살아남고 살리려면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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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1.18.(일), 20(화)
정리: 2026.01.18.(일), 20(화)


에스겔 37:1-14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살아남고 살리려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겔 37:3). 인간이 아는 상식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렵다고 답할 수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하신 질문의 의도를 살피고자 했다.

훗날 예수께 다가온 나병환자가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 8:2, 막 1:40, 눅 5:12)라고 하여 치유 받고, 비유대인 로마군 백부장이 예수님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 8:8)라고 하여 유대인들보다 나은 믿음을 보였다고 칭찬 받은 것에 비하면, “주께서 아시나이다”(겔 37:3)는 선지자의 대답은 믿음 없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칭찬이나 책망 대신 마른 뼈를 강한 군대로 되살리는 과정에 선지자를 동참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직접 뼈들에게 말씀하셔도 되는 걸 선지자더러 말하도록 하여, 그가 순종하여 말을 전하는 대로 뼈들과 생기 등이 그 말에 순종하는 걸 보게 하신 것이다. 선지자의 “주께서 아시나이다”는 답변에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실 수 있고, 하실 수 있다는 걸 아시며, 이를 선지자에게 알리시고, 또 되살아난 이들에게와 이들을 통하여 열방에 알리도록 하신다.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겔 37:6)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겔 37:13)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 37:14)

 나에게는 확신이 없다. 나는 아는 게 없다. 나는 여기 마른 뼈들 같이 버려진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하신 말씀대로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부르시고, 말을 거시며, 하나님을 따라 행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보이시며, 하나님의 일에 동참케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일으키시고, 되살리시며, 나아가 남들을 일으키시고 되살리는 일에 쓰신다.

가득한 마른 뼈들은 이 골짜기에 전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전쟁터에서 스러져간 이들. 많은 이들이 믿음의 싸움에서 좌절하고 패배한다. 죽은 지 오래되어 강건하던 근육은 말랐고, 혈관을 힘차게 돌던 피도 흔적이 없다. 나 역시 이렇게 백골이 진토 되어 흩어져 있다. 당연하게도 죽어 있기에 스스로는 살려달라거나 구해달라는 말을 할 수 없고, 손을 움직여 흔들 수도 없다. 눈물로 기도하고 열렬히 찬양하던 때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오늘날에도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은 꺼림칙하지만,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는 종교적으로 부정하다 여겼다(레 21:1, 레 21:11-12, 민 19:11-22, 학 2:13). 심지어 밖에서 뼈나 무덤조차 만지면 부정했었다(민 19:16). 그러니 이런 뼈 무덤 골짜기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가족조차 찾아오지 않아 수습되지 못한 시신은 방치되어 뼛가루가 되어가고 있다. 조문객도, 방문객도, 유가족도, 장의사도 없이 모두의 외면을 받고, 나 자신마저도 팔다리와 두개골과 갈빗대가 함께 있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아는 방향을 잃고 분열되었고, 분열된 나의 각자가 안구가 없으니 볼 수도 없는데도 하나님 빼고는 다른 모든 것들 각각을 추구하며 서로 멀어지고 있다. 누구도 내게 힘을 주지 않고, 스스로도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없다.

이런 나에게, 우리에게, 주께서 먼저 다가오신다. 구하지도 못했는데, 구하지도 않았는데, 구하기도 전에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내 몸을 하나로 맞추시고, 나와 같이 되시며, 내 손에 손을, 내 눈에 눈을 대시고(왕하 4:32-37), 심지어 나 대신 죽으셨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고 패배하여 죽었지만, 모두가 내게 다가오기를 싫어 버린 바 되었지만, 주는 질그릇 같은 내게 당신이라는 보화를 담아주셨다(고후 4:7).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뼛조각들을 모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모양만 갖추고 마네킹처럼 두지 않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신다(겔 37:9-10). 태초에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숨을 불어넣어 호흡케 하신 것처럼. 호흡은 살아 있음의 증거다. 호흡이 없는 몸은 죽은 몸이나, 의식하지 않아도 은혜로 호흡하는 몸은 살아 움직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살리는 하나님의 숨인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요 20:22).

사람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살아가는 때는, 언제나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으로 충만한 때다. 그러니 성령을 받고(요 20:22),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엡 5:18).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과 함께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고(눅 1:15-16, 눅 1:41-45, 눅 1:67-79, 요 14:12, 행 2:4, 행 4:31, 행 11:24, 행 13:9-12)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행 4:31).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마른 뼈가 전신갑주를 취한 강한 군사로 되살아난 것처럼, 되살아난 나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있다.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시며,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는 마른 뼈에게 긍휼로 찾아오시고 다가오셔서 되살리신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시며 떠나지 않으신다(요 14:17-20). 진리의 영은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진리로 살게 하시며, 진리를 살게 하신다. 선지자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생기가 운행했듯, 성령께서는 진리와 함께 일하신다. 우리에게는 기록된 계시인 성경이 있다. 성경은 많고 많은 책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성경을 파고들면, 그냥 읽을 때는 몰랐던 성경을 성령께서 드러내 보여주시고 알게 하신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마 6:10), 이 땅에서도 하늘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을 향하고 닮아가야 하는 건 기본 진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을 보이고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까? 진리의 영이자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그럴 수 있다. 성경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보면 기도로, 또는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시고 일하셨다. 예수님도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눅 11:13).

종합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 실패한 인생,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망한 인생, 죽은 것 같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인생, 하나님도 모르겠고 하나님에게 원망과 배신감이 배어 나오는 인생, 지나온 길도 후회뿐이고 앞길도 막막한 인생, 모두가 더럽다며 손가락질하고 부담스럽다며 기피하는 인생, 그래, 나 같은 인생은 이미 우리에게 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께 기도와 성경으로 문을 열어드려야 한다(계 3:20). 그러면 살아날 것이다. 그러면 살릴 것이다.

 

추가로, 며칠 전 있었던 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는 발달장애인 형제가 있다. 신체적 나이는 30대 중반이지만, 정신 연령은 5-7세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유아처럼 욕망하고, 유아처럼 사고하며, 유아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서 부모님이나 남의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다. 동네 건달들에게 돈을 뜯기면서도 좋다고 따라다닌다. 건달들에게 담배를 배워서 ‘안 피우면 죽을 것 같다’고 하는 니코틴 중독 상태까지 왔다. 잘 씻지도 않고, 교회에서 서리집사 직분은 매년 받고 싶어서 안달하는데, 정작 예배에는 나오지 않는다. 어쩌다 예배에 참석해도, 소리를 울리며 전화가 와서 받으며 큰 소리로 통화하다가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곤 건달들을 따라 예배 참석하면 돈 주는 이단 교회를 찾아간다. 어쩌다 대화라도 하면 어쩔 줄 몰라 손을 사정없이 비비고, 입술을 호달달 떨며, 순간을 모면하려는 거짓말을 늘어놓기 일쑤다.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만 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말과 말이 오가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청년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몇 년 전 성령으로 긍휼이 충만할 때 이 친구를 돌봐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도 지쳐갔고, 이 아이를 대할 때 관성으로 대하다가, 상대를 안 하다가, 최근에는 혼내고 짜증까지 냈다.

이 형제의 특징 중 하나는 스마트폰 메신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자기 사진과 함께 ‘OO(자기 이름)인데요보고싶어요’ 한 번, ‘보고싶어요’ 두 번, 눈웃음 이모티콘 ‘^^’ 세 번을 연달아 보내는 것이다. 눈웃음은 꼭 세 번을 입력해서 보내야 하는데, 강박 증상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밤 12시 45분을 넘었을 때 <흑백요리사2>를 보며 일하고 있는데 이 친구에게서 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스마트폰 알림이 쉬지 않고 7-8번을 울렸다. 남자가 남자에게 셀피를 보내며 보고 싶다고 하는 것도 께름칙한데, 매일 같은 메시지를 받으니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이 날은 “야 지금 몇 시인데 그러냐”고 타박하듯 답장을 보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시즌 2)' 프렌치 파파

때마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시즌 2)> 화면에서 ‘프렌치 파파’라는 별명을 쓰는 요리사가 나왔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사랑으로 치료하고 돌보며 우는 장면이 나왔다. 그는 다른 발달장애인들과 그 가족들과 함께 카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순간 내가 뭘 한 거지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 청년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 형도 OO이 보고 싶네. 그런데 너무 늦은 밤에 연락하는 건 좀 부담스러워~”

그러자 곧바로 이런 답장이 날아왔다. “어디서만날까요” 나는 “지금은 아니고 일요일에 교회에서~”라고 답했다.

은혜 받은 자로서, 나 역시 주변의 마른 뼈 같은 이들을 찾아 나서고 살펴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모두가 싫어하고 멀리하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찾아가셨다. 삭개오, 정오 우물가의 여인, 베다니 삼남매, 귀신 들린 사람들, 심지어 죽어 부패한 시신까지. 나에게는 이 형제부터가 시작인 듯하다. 사랑이신 하나님(요일 4:16), 내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사 주의 긍휼로 가장 작고 낮은 이들을 섬기게 하소서. 이것이 곧 주를 섬기는 것이라 하셨으니(마 25:31-40).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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