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09.01.30.(금)
정리; 2024.07.28.(일)
열왕기하 19:29-37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하나님의 열심
‘내가 기도하였기에’ 이전에 ‘하나님의 열심’이 먼저 있었다. 하나님이 그 열심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셨고 역사를 세세하게 주관하시며 앞일을 지정하셨다. 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과 내 삶과 영혼과 상황에 베푸시기 위한 통로를 넓히는 작업이었을 뿐이다. 기도 가운데 계획을 보이시는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나고 소망을 받는다. 내 기도로 하나님을 끌어다 쓰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도로 하나님께 비전과 은혜와 힘과 소망과 담대함을 받는다. 성령님의 주도적인 임재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기대한다. 하나님의 열심이 일을 이루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기에.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는 표현은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언에 특별히 쓰신 말씀이다. 열심히 믿음 생활(?)하던 히스기야가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번 앗수르에게 금을 바친 적이 있는데, 그래도 변하지 않고 악화되는 상황에 다시 주 여호와께 구원을 간구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의 진멸과 자기 백성의 회복을 말씀하셨다(이 예언은 요한계시록에도 이어지는 패턴이다). 베드로는 풍랑 중에 믿음의 걸음을 내딛어 바다 위를 잘 걷다가, 계속된 파도에 의심이 덜컥 들어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여호와의 구원’ 예수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였더니 그리스도께서 그를 잡아 일으키시고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셨다. 앗수르는 물러갔고 파도는 가라앉아 바다가 평온해졌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을 수월하게 하며 내가 알지도 못했던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게 한다. 그러나 의심과 그로 인한 두려움은 하나님 뜻의 성취를 막으려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내 생각으로는 이리저리 따져볼수록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떠한 방식으로 건지실지 답이 안 나온다. 스스로 하나님을 예측하여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내 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셔야 한다. 내 의지가 아니다. 일은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신다. 할 것이 있다면, 히스기야와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손을 뻗어 기도하는 것뿐이다. 이는 앗수르의 군대와 파도가 몰려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지하는 데서 나오는 기도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엎드리겠다는 의미이며, 주께서 나를 죽이시건 살리시건 순응하겠다는 절박함이다.
나는 지금 이러한 히스기야와 베드로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상황이 그들에게 닥친 만큼 절박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다. 새벽 기도는 나에게 하루를 시작하며 내 영을 깨우는 자리이자 시간이다. 이 호흡의 시간, 생명력을 공급받는 자리를 박탈당하는 문제가 절박하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그런데도 나는 잠잠하다. 오히려 내 육체는 반기는 눈치다. 두 시간이나 더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를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영혼의 갈망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도록.
이것도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위하여. 히스기야 때의 주께서 주와 그리스도의 계보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보호하며 구원하셨듯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를 예비하시고 기도를 회복하실 것이다. 성령을 부어주사 담대히 할 말을 하게 하실 것이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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