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3.12.18.(월)
정리: 2023.12.18.(월)
열왕기하 4:17-25a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그 아이가 자라매 하루는 추수꾼들에게 나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렀더니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사환에게 말하여 그의 어머니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그 남편이 이르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하는지라 여인이 이르되 평안을 비나이다 하니라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고 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 하고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차라리'를 넘은 소망
인생에 있어서, 때와 만남이 어긋나는 것 같은 사건과 사람들이 있다. 차라리 알지 못했다면,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수넴 여인은 가정의 오랜 숙원이었다가 나중에는 포기한 지 오랜 아이를 낳았다. 늘그막에 찾아온 기쁨. 이 아이를 만난 것이 복되고 자라는 걸 보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가 아픔을 호소했다. 아이는 품에서 앓다가 끝내 죽고 말았다.
아픈 모습을 보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죽기까지 하니 그 상실감은 얼마나 극에 달할까.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아예 없었더라면, 이렇게 아이가 아플 일도, 이렇게 내 가슴이 찢어질 일도 없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 아이를 주셨다가 도로 뺏어가시는가. 이럴 거면 차라리 애초에 아이를 알아가는 기쁨을 모른 채로 살게 두시지.
그러나 수넴 여인은 내가 예상한 비참함 속에 머물러있지 않고 정연하게 움직인다. 그녀는 아이의 죽음을 남편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을 안심시키고 40km를 나귀를 달려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간다. 아이를 낳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라면, 그의 하나님이라면 무언가 방도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껏 하나님의 사람이 수넴에 올 때 맞이해왔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그 선지자가 머무는 갈멜산으로 달려간다.
뒷장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도 부고를 전하지 않고 아이가 잘 있다고 말한다. 아이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이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 걸까. 믿기지 않는 현실에 아이의 생명을 주셨던 하나님께 물으러 간다. 아니, 답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아픔을 쏟아놓으려 하나님을 찾아간다. 오직 생명과 죽음의 주권에 하나님께 있으니, 묻지 못한 물음과 울음에 답을 들으러 간다. 왜 아이를 줬다 뺏냐고 따질 마음도 후회할 힘도 없고, 그저 아프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둘 뿐이다. 결국 남은 건 하나님뿐이니.
어긋난 시간과 때에 만난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 매달려보면 좋겠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려달라는 것부터 구해보기를. 그분이 어느 때 어떤 방법으로 답을 주실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알려주실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 4:6) 그래도 수넴 여인과 아이가 함께한 시간은 행복했으니, 이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선한 일을 행하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죽게 하셨으니, 아이 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신다. 하나님께서 슬픔 속에 있는 그대에게 공감하시는 위로를 받기를.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새 일을 경험하기를. 우선,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걸 기념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 즉 그리스도 축일에 그리스도(Christ)를 예배(mas)하기를. 우리가 한 성령 안에 있다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몸으로는 떨어져 있어도 영으로는 함께 있으니. 이는 영화 <밀양>에서 신애가 떠난 교회의 예배당에 종찬이 찾아가는 것보다 실제적일 것이다.
'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하 5:1-7 | 나아만과 바울, 그리고 무명의 여종 (0) | 2023.12.21 |
---|---|
열왕기하 4:25b-37 | 엘리사와 게하시 (0) | 2023.12.20 |
열왕기하 4:8-16 | 깨끗한 그릇의 소망 (0) | 2023.12.17 |
열왕기하 4:1-7 | 기적을 보려면 (0) | 2023.12.14 |
열왕기하 3:21-27 | 때와 상황을 아는 지혜 (0) | 2023.1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