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3.12.23.(토)
정리: 2023.12.25.(월)\
열왕기하 5:20-27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개역개정)
나의 묵상: 상황 인식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여 나아만의 예물을 거절했지만(왕하 5:16), 게하시는 끔찍하게도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여 예물을 챙기려고 한다. 그가 나아만의 치유에 공헌한 게 있었는가? 요단강에 몸을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을 전달한 게 그라면 그 정도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전하여 더 큰 공이 있는 엘리사에게 예물이 돌아가야 하지 않나.
하지만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셨기에 순종만 했을 뿐인 자신은 대가를 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게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데 자신이 큰 일을 한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내가 말을 전했으니 기적이 일어난 거 아냐? 내가 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어?’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일하신 같은 사건에 대해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마저도 수용하고 해석하는 바가 다르다. 누구는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내가 기도하니까’, ‘내가 헌신했더니’, ‘내가 가르치니까’라고 말한다. 각 문장의 주어는 일의 주체를 누구로 인식하는가를 드러낸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잊기까지 하나님을 드러내어 높이고,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부각하며 하나님을 객체로 밀쳐 놓는다. 수고하고도 자신을 무익한 종이라며 낮추는 사람(눅 17:10)을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숟가락만 얹고도 분수 모르고 상좌에 앉으려는 교만한 사람(눅 14:8-9)은 자기 발에 걸려 패망한다(잠 16:18).
게하시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맹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겼을 뿐만 아니라(출 20:7, 신 5:11),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주려는 나아만의 착한 심성을 이용했고, 나아만에게 물건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줄 거라고 거짓말을 했으며, 예물을 나르는 나아만의 수하에게도 자신의 계략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그들의 노동력을 속여 취했다. 그는 예물을 아간처럼 잘 감춰뒀다.
그러나 게하시는 아간과 같은 실책을 저지른다. 사람은 찾을 수 없어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아간은 홍해를 가르고 기적으로 광야를 인도하셨으며 여리고를 무너트리신 하나님이 자신의 횡령을 모를 거라 생각했다(수 7장). 게하시는 엘리사 선지자를 따르며 하나님의 기적을 여럿 경험했지만, 그는 그 하나님이 자신의 계략을 모를 거라 믿은 걸 넘어, 그동안 하나님의 일을 하며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여겼던 듯하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제야 자신에게 보상해주신다고 상황을 해석하고, 나아만이 자신이 요구한 예물의 두 배를 주자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한다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히 주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예물을 받겠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듯하다. 그는 욕망의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바꿔치기한 여로보암의 길을 가고 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방인 나아만은 기쁜 마음으로 헌금했고, 하나님의 일을 곁에서 오랜 시간 수없이 겪어왔고 동참하기도 했던 게하시는, 그 헌금을 착복하다 나아만의 나병을 자신이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의 감사를 받으셨겠지만, 게하시는 하나님 나라와 의 대신 하나님의 선물만을 바라고 심지어 헌신의 대가를 자신이 속여 취하려다가 패망했다. 반면 나아만은 앞장에서도 묵상했듯, 병을 고치러 왔다가 ‘하나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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