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1.07.(목)
정리: 2024.11.08.(금)
욥기 6:1-13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개역개정)
나의 묵상: 헌신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엘리바스의 장황한 말 폭탄에 욥은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부터 토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탄 속에서, 욥은 지금의 상황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공격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과 원수로 여기고 치신다는 것이다.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 하나님이 나를 멸하려 하다니, 그래서 누구도 버틸 수 없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욥은 부글부글 끓다가 터져 나오는 속앓이에서 억울함을 드러낸다(10절).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왜 나를 때리시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은 욥의 하나님과 자신에 대한 관점을 왜곡했다. ‘순종한 자신을 원수 삼는 하나님이 불의하고, 오히려 내가 의로운 게 아닌가? 내가 이토록 충성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나? 하나님이 배은망덕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듯, 하나님을 직접 만나면 진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끼리의 이러쿵저러쿵 말이 끝나고, 친히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준엄하게 따지신다. “전능한 하나님과 다투는 욥아, 네가 나를 꾸짖을 셈이냐? 네가 나를 비난하니,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욥 40:2, 새번역)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욥 40:8, 개역한글)
그제야 자신의 실상을 파악한 욥은 다만 이렇게 반응할 뿐이었다. “아, 제 입이 너무 가벼웠습니다.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사옵니까? 손으로 입을 막을 도리밖에 없사옵니다.”(욥 40:4, 공동번역) 두 장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잘못 생각하고 판단했다는 걸 알고 회개한다. “무식한 말로 주의 뜻을 흐리게 하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나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였고 너무 신기하여 내가 알 수도 없는 말을 하였습니다.”(욥 42:3, 현대인의성경)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욥 42:6, 새번역)
욥은 알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적이 아니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약 1:13). 현재의 고통과 괴로움이 하나님이나 자신, 상황에 대한 관점을 구겼지만, 빛이자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나자 캄캄했던 인식의 지평이 밝히 드러나고, 하나님과 나와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얻었다. 욥은 말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개역개정) 내가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내 고난 가운데도 함께하시는 주님, 어제는 금식 23일차에 한계가 왔습니다. 기력이 없고, 생각과 행동이 느려지다가 멈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임을 믿으니,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하신 말씀(사 40:31)을 믿자 오늘 기력을 완전히 찾았습니다. 저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힘을 주께서 창출하셨습니다. 남은 금식의 기간에도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저와 늘 동행하시고, 저는 주와 함께 늘 걷게 하소서.
이 기간에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하시고, 제가 하나님 귀에 말씀드리는 사람들을 주께서 기억하시고 사랑하사, 주의 선하신 때에 주의 선하신 방법으로 찾아가소서. 그래서 제가 욥처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듯, 그들도 저처럼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주셔서, 그들이 모든 두려움을 가볍게 여기고 담대하게 하소서. 혼자 걷지 않는다는 것을, 주께서 함께해오고 계셨음을 알게 하소서.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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