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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since 2019.07(2023.01-04 제외)

욥기 6:14-30 | 고난 속의 내게 필요한 것은

by 조나단 브레이너드 2024.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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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1.09.(토)
정리: 2024.11.09.(토)


욥기 6:14-30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개역개정)

 

나의 묵상: 고난 속의 내게 필요한 것은

욥은 자신이 괴로워서 토로하는 말을 친구들이 꼬투리를 잡아 책망하자(“너희는 내가 절망 가운데서 몇 마디 한 말을 책잡으려고 하느냐?”, 26절, 현대인의성경), 고난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책망의 이유도 알 수 없어 더 괴로워한다(25절). 억울함까지 더한 욥은 내가 뭘 잘못했냐고 대보라고 한다(24절). 욥에게 있어 친구들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막대기를 뻗어 건져주거나 빠져나오도록 응원해주기는커녕, 막대기로 자신의 머리와 어깨를 밀어 넣는 이들이었다. 또한 이들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인신매매범같이 자신을 지지고 볶아 토론의 승리라는 별것도 아닌 유익을 챙기려는 불량배들이었다(27절). 낙심하여 믿음을 잃어도 친구라면 동정해주고 믿음을 되찾도록 격려해줘야 하는데(14절), 이들은 친구도 아니었다.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도움은커녕(“no help”, 21절, TNIV) 괴로움만 더하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저 상상 이상의 재앙 앞에 두려워 아무나 할 수 있는 ‘전문가적 논평’만 늘어놓을 뿐이었다(21절).

욥은 잘못한 게 없기에 잘못한 게 없다고 말했을 뿐 거짓말로 우기는 게 아니었다. 욥은 원수 같은 친구들에게 괜스레 고아 같이 버려진 자신을 괴롭히는 악을 저지르지 말라고, 친절하게 바라봐 달라고(“be so kind as to look at me”, 28절, TNIV) 인정에 호소한다. 욥이 바란 것은 분석과 정죄가 아니라 온정과 긍휼이었다.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자리에 한 노인이 앉았다. 그는 내 휴대폰 화면을 슬쩍 보더니 갑자기 상스러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이유를 묻자 그는 더 큰 소리로 욕을 하며 버스 안을 소란스럽게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내민 간이 고소장을 작성하기까지 했다. 그 노인에게 내가 뭘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는 내가 휴대폰으로 장난질을 쳤다며 화를 내고 욕을 했다. 욥이 이런 억울한 상황에 있던 걸까. 그런데 왠지 버스 승객들의 시선에서 나와 노인을 싸잡아서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물론 나와 같이 하차한 아주머니가 “젊은 사람이 참아야지. (노인이)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더만”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 정신 나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했을까? 내가 받은 피해를 기준으로 처벌을 요구해야 할까, 아니면 노인이 정신이 아픈 환자라는 기준으로 안쓰럽게 생각해야 할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것이다.

전에 언급한 교회의 지체 장애 2급 청년도 생각난다. 그가 하는 언행과 보내는 휴대폰 메시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부담이었고 밀어내고 싶었었다. 매일 같이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았고, 예배나 기도회에 올 생각도 없으면서 올 것처럼 ‘간을 봤다.’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그 청년의 정신 연령이 5-7세 수준이라는 걸 알고 나자 내 마음 자세와 태도가 달라졌다. “어리니까” 본능대로 움직이는 걸 이해, 아니 적어도 참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다 친절한 얼굴(be so kind as to look at him)을 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일은 단지 그 아이를 나쁜 길로 인도하는 동네 건달의 영향에서 최대한 떨어트리는 것과, 사랑과 자비를 포기하지 않는 것 정도다.

내가 위하여 기도하는 분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나 그분이 고난 중에 있든 기쁨 속에 있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사랑이신 하나님 알아가기를 그치지 않는 것.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마음을 다 가지려 하는 것. 그분도 그러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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