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4.11.12.(화)
정리: 2024.11.12.(화)
욥기 9:13-24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개역개정)
나의 묵상: 나쁜 하나님
고난에 파묻힌 욥은 이제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의 탄식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은, 적어도 자신과 무관한 방관자 또는 방치자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크고 높은 하나님은 나 따위 미물의 인생에 관심도 없다. 내 기도를 듣고 있을 거란 믿음과 기대가 없다. 하나님은 내게서 멀다.
세상에선 악인들이 득세하고, 약자에게 억울한 판결이 판을 치며, 재난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러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다. 세상에 비명이 가득 차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하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둔 하나님은 나쁘다. 재난과 억압 속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절망은 그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홍수가 난 개미굴에서 개미들이 필사의 저항을 해도 뭇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의 울음을 귓등으로 듣고 오히려 냉혈한처럼 비웃기까지 한다.
나아가 크고 높은 하나님이 그 권능으로 이 작은 나를 때린다. 심술 궂은 사람이 손가락으로 개미를 눌러 터트리듯이 나를 누른다. 못된 심보를 가진 사람이 개미를 밟아 죽이듯, 하나님께서 내 목을 조르는 데에는 이유도 없다. 잘못한 것도 없는 나를 징계하는 하나님은 불의하다. 그는 공명정대하며 의로운 재판관이 아니다.
욥의 하나님을 인식하는 관점(神觀)은 올바를까. 당연히 아니다. 욥의 신관이 찌그러진 건 그의 인생이 찌그러졌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이, 몸이 상하고, 회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에게 남은 건 당연히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뿐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다 못해 괴롭힌다고 생각할 만큼.
욥의 주변인들이 그를 위로하고 사랑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너무 비참해서 그랬겠지만, 욥의 아내는 욥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다.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진리를 말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욥에게 찾아온 세 친구는 옳은 말을 섞어서 하면서도 고난 속의 욥을 말로 공격했다. 괴로움이 가중된 욥에게 단 한 명이라도 진리를 담은 사랑, 사랑을 담은 진리로 다가와줬다면.
결국 욥기 종반부에 크고 높으면서도 사랑과 진리의 하나님께서 친히 등장하신다. 그제야 욥의 머릿속을 장악하던 오해와 왜곡의 장막이 걷힌다. 빛이 오자 어둠이 물러난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던 것에 크게 민망해하며 회개한다.
전에도 몇 번 적었지만, 하나님은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약 1:13). 하나님의 큰 그림을 위하여, 하나님도 고통스럽지만 고난을 허용하실 때는 있지만, 그때에도 감당할 만한 시험만을 허락하신다(고전 10:13). 이와 관련하여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유석경 저, 규장)에서 적은 바를 독서 모임에 참가한 청년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는 그동안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해온 줄 알았다며 자신의 기구한 사정의 원인을 은연 중에 하나님 탓으로 돌리던 원망을 그치고 자유로워졌다.
진리가 자유케 한다(요 8:32).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상황의 끔찍한 변화에도 마음을 지켜준다(잠 4:23). 나아가 상황과 조건을 이겨내고 극복하게 한다. 절망 속에서 좁아진 시야로는 보이지 않던 타개책을 발견케 한다. 진리의 등불이 켜지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 16:13).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모든 이들에게 따스한 진리의 성령께서 다가가시길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사람들, 사랑하고 섬길 사람들을 보내주시기를 소원한다. 욥의 아내나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빌립 같은, 바울 같은, 베드로와 요한 같은 사랑의 전도자들, 긍휼의 선교사들을 보내주시기를 갈망한다.
나는 비록 작고 약하나,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나를 쓰시고 보내주소서. 사랑으로 이 땅으로 오신 선교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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