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0.11.18.(수)
정리: 2020.11.18.(수)
히브리서 2:5-9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에 두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가 성경 어딘가에서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여 주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주님께서는 그를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셨으나,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그에게 씌워 주셨으며,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람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다만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쓰신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새번역)
나의 묵상: 절망 속 평안의 이유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주와 함께 쓰려면, 주의 고난과 죽으심도 내 몸에 짊어져야 하는가.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면류관이 앞에 놓였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주의 죽으심과 부활의 은혜를 입은 것만으로, 영벌에서 영생으로 옮겨진 것으로도 족한데, 주께서는 내게 어떤 면류관을 주시려고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걸까. 마음 같아서는 감당할 수 없으니 마다하고 싶다.
원래 글을 쓰면서는 그러려고 했다. 못 하겠다고. 그냥 평범하게 살 수는 없는 거냐고. 그런데 글을 적다 보니 다시 하나님께 나를 맡길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어떠한 담대함이나 확신이 아니라 자포자기의 심정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라고 내맡기는 것이다.
갈수록 나의 약함과 무력을 경험한다. 조심스럽게 구하는 건, 약할 그 때에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 내 힘과 능을 모두 내려놓으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셔야 한다. 감히 하나님과 협상하려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이 싸움을 이기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셔야 한다.
쓰면서 보니 이건 협상도 아니다. 나는 드러눕고 배 째란 식이다. 만물을 발 아래 복종시킨 권세를 보여 달라고 떼쓰는 것이다.
나는 십자가 너머의 영광을 내다보며 이 시간을 기뻐할 수 있을까. 어제 고등학생 때 했던 묵상을 컴퓨터에 옮겨 적으면서 일말의 후회가 일었다. 2005년 4월 당시 나는 가시밭길이어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사용해달라고 적었다. 이런 기도는 참 잘 받으시는 하나님이신 것 같다. 이런, 이건 요나의 마음인 걸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다면 그리스도인의 몸과 마음이 상해가는 게 마땅하냐며 괜한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고난마저 합력하여 종국에는 선하게 이루실 텐데.
그래, 그러니까 좀 더 하나님을 신뢰해보자. 오늘 눈을 뜨며 생각난 찬양의 고백이 오늘부터 영원히 내 삶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세상은 변해가고 소망은 힘을 잃어도
변함없이 붙드시는 그 구원의 손길
폭풍이 몰려와도 두려움 물러가네
우릴 위해 싸우시는 그 손을 의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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