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19.08.29.(목)
정리: 2021.03.03.(수)
히브리서 9:15-28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는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에서 사람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유언의 효력을 논의하는 경우에는, 유언한 사람이 죽었다는 확인이 꼭 필요합니다. 유언이라는 것은 유언한 사람이 죽어야만 효력을 냅니다. 유언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유언은 아무런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첫 번째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율법을 따라 모든 계명을 백성에게 말한 뒤에,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송아지 피와 염소 피를 취하여 언약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고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또 같은 방식으로 그는 장막과 제사 의식에 쓰이는 모든 기구에도 피를 뿌렸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물은 이런 여러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보다 나은 희생제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성소 그 자체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아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이하시기 위하여 시대의 종말에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새번역)
나의 묵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날 자녀라 하시네
죄는 욕심과 사망과 얽혀 있다. 정죄감은 절망과 허무를 가져온다. 하나님과 끊어진다는 실망과 실패감은 갈래길에서 하나님과 더 멀어지는 길을 택하게 유도한다. 이 사망의 올무는 위기의 순간을 만들어 그 현장 밖을 생각지도 못하게 한다. 커다란 검은 천으로 나를 덮어 묶듯이. 훈련병 시절 야외에서 CS탄의 자욱한 최루가스에 둘러싸였듯이. 그리고 절망. 포기. 공허. 의지 박탈. 실패자가 느끼는 자구 불필요성.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뜰 때 머릿속에서 찬양이 울렸다. <날 자녀라 하시네>란 곡이었다.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럼에도, 하나님의 자녀다. 이 메시지가 나를 다시 살게 했다. 충만까지는 아니더라도 공허 속에서 돌 한 덩이만큼 열매가 되었다. 소망이 생겼다. “자격 없는 날 왕께서 반기시네”, “잃어버린 날 찾으신 그 사랑”, “나 죄 아래 있을 때 날 위하여 죽으신 예수”, “독생자 예수 자유케 하네”, “아버지 전에 거할 곳 있네”, “주의 자녀라 하시네”, “주의 자녀라 하시네”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셔야 할 만큼 죄의 영향력은 크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다. 하나님의 의지가 더 강하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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